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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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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윤제림

  • 기사입력 : 2015-08-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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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담근 김치를 들고 아버지가 오셨다.

    눈에 익은 양복을 걸치셨다.

    내 옷이다, 한 번 입은 건데 아범은 잘 안 입는다며

    아내가 드린 모양이다.



    아들아이가 학원에 간다며 인사를 한다.

    눈에 익은 셔츠를 걸쳤다.

    내 옷이다, 한 번 입고 어제 벗어놓은 건데

    빨랫줄에서 걷어 입은 모양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나를 훈육하기 위해 사용되는 커리큘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 사랑하기에 힘들고 미워하기에 또 힘든 역설적인 존재. 그렇다고 무를 수도, 자를 수도 없는 불가항력적 존재….

    그냥 ‘내’가 ‘너’고 ‘걔’가 ‘나’인 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이 아닐까요? 가족에 대한 이러한 설정을 혹시 ‘옷을 바꿔 입기’ 혹은 ‘옷을 나눠 입기’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요?


    한 번 입고 아껴 둔 화자의 새 양복을 아버지가 입고 계시네요. 하마터면 실수를 할 뻔했지요. 어, 내 옷이…? 라고 말입니다. 상황이 빠르게 짐작되는 순간이지요. 아범은 잘 안 입는다며 아내가 드려야만 했던 어떤 정황을요…. 상황은 아들에게도 비슷하게 펼쳐집니다.

    교복을 벗고 학원으로 가던 차에 맞닥뜨린 아들의 셔츠 또한 한 번 입고 아끼느라 세탁통에 벗어 둔 화자의 새 옷이네요. 후줄근한 양복을 걸친 아버지의 노구에 입혀진 새 양복이나 교복 외에 달리 번듯한 사복이 없는 아들의 상의로 걸쳐진 티셔츠나, 다 자신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화자의 인식은 먹먹합니다. 자신이 ‘가장(家長)’이라는 깊은 고백이니까요.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은 ‘가족’입니다. -조예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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