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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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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서랍 속 몽당연필- 유행두(시인·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5-08-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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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을 하면 연필을 깎는 것부터 일과가 시작된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연필깎이에서 뾰족하게 깎여져 나오는 연필심을 보면 마음을 잘 깎아놓은 듯 기분이 좋아진다. 이 연필을 통해 아이들이 미래의 꿈을 가지런하게 잘 써 주길 바라며 아픔이 있어도 잘 견뎌내는 올바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도 하고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 있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바르게 변화되고 이 아이들을 통해 그 가정이 변화되며 그 가정을 통해 사회가 변화될 수 있는 나비효과가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도 더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칼을 이용해서 연필을 깎았다. 아이들의 책상 속에는 연필을 깎고 난 찌꺼기를 보관해 놓는 성냥곽이 있었다. 교실 바닥이 지저분해지지 않기도 했지만 성냥곽에는 선생님이 직접 써 주신 글귀가 있었다. 아이들마다 다 다른 내용이었는데 내 성냥곽에는 ‘헤밍웨이는 매일 스무 자루의 연필로 글을 썼다’라는 문구였다. 선생님의 글씨체는 서예 글씨처럼 정성이 가득 들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바른 글씨였다.

    스무 자루는커녕 하루 한 자루의 연필도 나한테는 귀할 만큼 어려운 시절이어서 헤밍웨이라는 사람은 참 부자였구나라는 철없는 생각만을 했던 것 같다.

    글짓기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에 부러진 연필을 깎을 시간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멀뚱멀뚱 칠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안 쓰고 있냐는 질문에 연필이 없다는 말을 했다. 선생님이 앞으로 나와 보라고 하셨다. 혼이 나겠지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책상 서랍을 열더니 몽당연필 두 개를 볼펜대에 끼워 나에게 건네셨다. 선생님의 책상 서랍 속에는 몽당연필이 한 아름 묶여져 있었다. 그리고는 짧아진 연필이 써 온 길만큼 소중한 이야기를 써 보라며 격려까지 해주셨다.

    어떤 내용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선생님의 몽당연필로 쓴 글은 두꺼운 노트가 부상인 상을 받게 해주었다. 한참을 그 노트를 품고 잠을 잤던 것 같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 선생님 서랍 속의 몽당연필은 연필을 가져오지 않는 아이의 수학문제를 풀다 짧아지기도 했을 것이고 꿈이 자라는 만큼 연필은 더 짧아져 갔을 것이다.

    헤밍웨이의 글귀와 선생님의 서랍 속 몽당연필은 내 꿈의 씨앗이었다. 나중에 선생님처럼 누군가에게 마음을 감동시켜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나도 언젠가는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마음의 중심을 보는 눈을 가지는 방법도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다.

    새 학기가 되면 나는 많은 양의 연필을 산다. 길쭉한 연필이 몽당연필로 짧아지는 동안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써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 서랍 속에도 연필깎이로는 더 이상 깎여지지 않는 몽당연필이 가득 들어있다. 이런저런 공모전에서 받은 상이 그 아이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깎아놓은 연필들이 아이들의 꿈 씨앗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연필을 깎는다. 고르게 잘 깎여 나오는 연필을 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얼마나 격려해 주었던가. 더불어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었던가. 뾰족한 연필심으로 쓴 글이 어떠한 이의 마음을 찌르지는 않았는지 반성하면서.

    유행두 (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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