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0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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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107) 고성 (17) 하일면 소을비포성지~고성읍 고성시장

자란만 품은 가룡마을엔 애틋한 전설이…

  • 기사입력 : 2015-08-1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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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을비포성지 입구 들어서니
    눈앞엔 자연석으로 복원한 성벽
    계단모양 높은 성턱 넘기 힘들어
    할머니들 위한 경사로 생겼으면…


    자란만에 안겨있는 가룡마을
    효성으로 아버지 병환 낫게 한
    형제바위 전설 이야기 들으며
    자란도의 풍경 마음에 담아본다


    한가로운 해변길 따라가니
    아담한 산세와 산봉의 좌이산이…
    옛날 통신수단이었던 봉수대
    현재는 둘레 36m의 석축만 남아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고성시장
    전통시장은 정겨운 추억 깃든 곳
    흥정 벌이는 모습 사람냄새 물씬
    장사가 곧 삶인 이들의 정감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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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 하일면 용태리 가룡마을 전경. 이 마을에는 두 아들의 효성에 감동해서 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했다는 형제바위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모두가 덥다고 휴가를 떠나는 여름철이다. 실크로드의 여정을 따라 떠난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은 연일 40℃의 기온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국내선 비행기로 수도 타슈겐트에서 오아시스의 도시 우르겐치까지 2시간 30분을 가는 동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사막이 이어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막의 도시 히바도 더위로 숨이 턱까지 막혀 왔고 목구멍은 뜨거운 열기에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그래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서도 불행하다고 하지 않았다. 덥다고 호들갑을 떠는 우리 일행이 민망스러웠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했다. 나무와 숲이 우거진 우리 자연 환경이 고맙고 아름다웠다. 계절 따라 형형색색 꽃들이 피고 지며 울창하게 우거진 숲의 향연은 더없는 행복을 담아준다. 자연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들의 것이다.

    우리도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안을 찾을 때이다. 그래야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만날 수 있다. 자연에서 깨끗한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실 수 없다면 결코 좋은 환경은 아니다. 자연이 말없이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찾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만날 수 있다.


    소을비포성지와 용태리 가룡마을

    아름다운 한려수도 상족암을 뒤로하고 하일면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잔잔한 바다와 고즈넉한 마을을 옆에 두고 이어지는 길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금계화의 노란 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연분홍 꽃을 선사하는 배롱나무도 여행길에 만나는 말없는 친구들이다. 하일면 동화마을 언덕에서 작은 소을비포성지가 반겨주고 있었다.

    마을입구에는 단란한 가족들이 오순도순 오토캠핑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문으로 오르는 오솔길을 따라가니 작은 항구가 발아래로 펼쳐지고 성문에서 유모차를 밀고가다 쉬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있어 발걸음을 재촉했으나 할머니는 성내를 지나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 성은 조선 전기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던 군사시설이다. 성은 바닷가에 돌출한 낮은 야산에, 해안의 경사를 따라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

    성벽은 커다란 자연석과 깬돌을 이용해서 복원했고 앞쪽은 바다와 접하고 있어 자연적인 방어시설 역할도 했다. 현재 복원되어 남아 있는 성의 규모는 둘레 200m, 높이 3m이고, 북쪽에 성문이 남아 있다. 성은 인근의 좌이산과 사량도의 봉수대와 연결돼 있어, 비상시에 바다에서 적을 막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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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을비포성지 전경.

    유모차를 밀고 인근 마을 친구에게 나들이 나왔다가 집으로 가며 성벽을 넘는 사람은 박개업 (80) 할머니이다. 시골에 가보면 불편한 몸을 유모차에 의지해 다니는 노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일종의 옛날 노인들이 사용했던 지팡이 역할을 하고 있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예전 성벽을 복원하기 전에는 나들이나 성내에서 운동을 할 때 쉽게 성벽을 넘었으나, 지금은 계단처럼 높은 성 턱이 생기면서 넘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은 거창한 것은 아니다. 나무나 철재로 비포소을성벽에 경사로를 만들어 몸이 불편한 동화리 할머니들이 쉽게 다니도록 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유산도 인간과 공존할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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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일면 학림리 바닷가 고연마을 앞을 지나는데 이태행(80), 최막이(80) 노부부가 취나물을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삶아 도로변에서 말리고 있었다. 청정지역 자란만의 따뜻한 해풍을 맞고 자란 하일면 취나물은 향이 강하고 아삭아삭해 특산물로 자리 잡고 있다. 노부부는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취나물 농사를 짓고 있었다. 생취나물 10kg을 삶아야 마른 취나물 1kg이 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는 농사도 짓고 소를 키우며 미장일도 하면서 2남2녀를 훌륭하게 잘 키웠다고 했다. 해외여행을 11번 다녀왔다고 자랑을 하며, 취나물을 팔아 터키 여행을 가기 위한 비용을 마련한단다. 우리 시대의 부모는 자식이 잘되면 덩달아 행복한 마음으로 힘든 지난 세월을 버텨왔다. 노부부의 소박한 터키 해외 여행의 꿈이 이뤄지기를 바라며 작은 고개를 넘으니 잔잔한 한려수도 자란만에 안겨있는 하일면 용태리 가룡마을이다.

    표지석 옆에 낚시차량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어촌 한적한 마을에 이런 안내판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 주민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남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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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처럼 만든 성턱.

    용태리 가룡마을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담임을 2번이나 했던 제자 배구택(35)의 고향으로 예전부터 아름다운 고향이라고 여러 번 자랑을 했던 곳이다. 이곳에는 그의 부모 배기도 (69)·심진순(65)씨가 어업과 농업을 하며 살고 있었다. 마을 앞 팔각정에 앉으니 앞으로는 자란만의 풍경이 가득하고 뒤로는 수태산이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가룡마을을 닮은 배씨는 마을이장과 선박의 출입을 관리하고 있었다.

    가룡마을은 산세가 ‘소멍에’ 같다 해 멍에 가 자를 써서 가룡이라 부르고 마을 앞에 자란도가 있었다. 가룡 마을에는 아버지를 살리고자 하는 두 형제의 애틋한 전설이 바다 위에 떠 있다. 팔각정에 앉아서 배씨로부터 두 아들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해서 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했다는 형제바위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들어보니 지척에 자란도가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오면 배를 타고 자란도에 가보아야겠다. 마을 회관 앞마당에서도 청정지역 취나물을 말리고 있었다. 여름휴가를 한가로운 어촌 가룡마을에서 보내도 좋겠다.



    좌이산봉수대와 고성시장

    한가로운 해변 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 만난 좌이산은 높이 321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아담한 산세에 두 개의 산봉이 정상을 알려준다. 좌이산에는 봉수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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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시장의 상인들.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 통신수단이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시야가 확 트인 산꼭대기에 설치했다. 평시에는 하나의 불꽃이나 연기,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둘,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셋, 바다에서 적과 접전이 이루어지면 넷, 적이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 설치된 좌이산 봉수대는 전체 면적이 240.5㎡이고 둘레가 73m 정도였지만, 현재는 36m의 석축만 남아 있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는 들판에는 가을을 기다리는 곡식들이 익어가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서둘러 고성시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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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시장의 각종 물품들.

    시장에는 다양한 삶과 애환이 깃들어 있다. 고성시장은 매월 1일과 6일에 장이 서는데 상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준비된 물건을 내다 팔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 나와 조금이라도 더 싼 가격에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상인들과 흥정을 벌이는 모습에서 사람냄새가 물씬 풍겼다. 전통시장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정겨운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고성시장은 1832년경부터 객사 앞에 시장이 열렸다고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장날이면 싸전을 비롯해 포목전, 농기구전, 목물전, 옹기전, 옷가게, 각종 잡화류전 등과 주변에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고성시장은 옛날부터 쌀의 집산지로 통영에서 많은 쌀을 사갔고 인근 항구에서도 배에 쌀을 싣고 부산으로도 이송했다. 상인회장 최수연(53)씨는 고성시장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세상일이 그렇듯 단합해서 한마음으로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었다. 상인들이 마음을 모아 이제 명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현대화 사업으로 주차장과 화장실을 수리해서 쾌적한 환경을 만들었다. 교양교육과 손님맞이에 친절한 자세와 의식개혁 등에 대한 상인 연수회를 실시해 ‘문제는 시장이 아니라 상인이다’라는 마음으로 사람들 만족을 위한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장사가 곧 삶이고, 장날이 곧 생일인 이들의 투박하면서도 인심과 정이 묻어 있어 정감이 가득했다.

    심재근 (마산대학교입학부처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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