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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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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同質)- 조은

  • 기사입력 : 2015-08-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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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 나 지금 입사시험 보러 가. 잘 보라고 해줘.

    너의 그 말이 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밧줄처럼 잡고 있는

    추레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잡을 것이 없었고

    잡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잠이 들었다



    망설이다 나는 답장을 쓴다

    - 시험 잘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오른 듯한 화자에게 느닷없이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날아듭니다. 열어보니 모르는 사람이네요. 다시 한 번 수신번호를 살펴봅니다. 역시 모르는 사람임을 확인하고 삭제 버튼을 누르려고 하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 ‘전화를 밧줄처럼 잡고 있는 추레한 젊은이’가 시야에 들어오지요.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 창을 절박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젊은이는 순간 화자 자신의 모습으로 오버랩됩니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던 시절, 땅에 발이 닿지 않던 시절, 절망감이나 외로움보다 더 무서운 무력감으로 텅 빈 채 허깨비같이 헤맸던 젊은 날의 자신을 말입니다. 그와 함께 지하철 안의 젊은이와 문자메시지의 발신인이 또다시 동일시되지요. 그래서 휴대폰이라는 ‘밧줄’을 끊지 않습니다. ‘동질감’으로 이렇게 든든히 얽어매지요. “시험 잘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휴대폰 시대의 참 고마운 소통이지요? 문명의 또 다른 혜택입니다. 문명의 양지가 이렇게 따스할 수도 있군요. 조예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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