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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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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쉴 곳은 많으나 놀 곳은 없다- 정정헌(마산대 외래교수)

  • 기사입력 : 2015-08-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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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위가 극심한 해였다. 올해도 무더위를 피해 많은 가정에서는 바다나 계곡 아니면 잘 조성된 공원이나 유원지 등지를 찾았을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현대의 공원이나 휴양지의 개념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기반으로 조성된 것인지, 아니면 서구적인 공원 개념을 편의적으로 적용한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도 문화정책이 얼마나 고유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는지, 민족 정서와 동떨어져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원(公園·park)은 자연풍경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1967년에 공원법이 제정된 데서 비롯된다. 이를 기반으로 그해 말 지리산 일대를 국립공원화하면서 본격화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서구적인 개념의 공원은 있었다. 1888년에 인천의 각국 거류지에 이른바 각국공원(各國公園)이 최초로 조성된 것이다. 이후 1890년 일본공원(東公園), 1897년 독립공원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체계적인 도시공원의 조성은 1960년대 이후 국민소득과 여가시간의 증대로 공원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현대의 공원으로 변모됐다.

    유원지(遊園地·amusement park)는 공원보다는 공공의 목적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오락과 레크리에이션 시설 등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령이나 계층에 구애됨이 없이 모든 사람이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일상생활의 긴장에서 벗어나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공원이나 유원지는 현대인들에게 필수적인 공간임은 부정할 수 없다.

    어느 나라에서나 공원이나 유원지는 공공성이 강조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음주가무 등은 일절 금지된다. 그러나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의 방법에 대한 계층 간 사회적인 합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원지의 경우 단어의 의미에서조차도 ‘논다’라는 개념이 분명하게 함의돼 있음에도 ‘놀되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는 등의 행위는 풍속에 저해’되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노인층의 인구가 짧은 기간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 계층은 북을 치고 장구를 치면서 음주가무로 흥이 나야 ‘제대로 논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음주가무는 우리 민족에 내재돼 있는 유전인자로 한민족의 정체성 중 하나이다. 음주가무는 마을 구성원들 간 소통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봄철의 삼월 삼짇날과 가을철의 중구일이 대표적이다. 이날만큼은 백일 제쳐두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을 인근의 산이나 들에서 종일 악을 치면서 즐겨 놀았다. 이런 풍습은 강점기를 거쳐 학교사회의 봄 소풍과 가을 소풍으로 이어졌고, 봄가을이 관광 시즌이 된 연유이기도 하다. 이로 보면 전통적 의미에서의 ‘논다’라는 개념과는 지금의 공원법이 괴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구적인 공원의 잣대로 국민들을 고민 없이 편의적으로 이끌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부합되는 공원법을 제정할 수 없었을까. 민족에 내재돼 있는 자발적인 흥취문화인자를 백안시할 것이 아니라 조장하는 공원법은 제정할 수 없었을까. 민족성과 동떨어진 정책은 편의적일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오는 역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필자도 현재의 세계적인 추세인 공원의 개념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특정 시기에는 공원이나 유원지에서도 음주가무하면서 맘껏 놀 수 있는 대동의 놀이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계층 간의 이해와 정책적 배려가 아쉽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여느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특정한 날 특정한 열린 장소에서 세대와 계층이 어우러져 풍악을 치며 노는 광경이 또 다른 문화관광상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정헌 (마산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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