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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결혼식과 눈도장- 명형대(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5-08-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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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메르스며 낯 뜨거웠던 정객들의 정치공방들이 무더위와 함께 물러간다. 이즈음은 계절도 여름 더위가 서서히 물러가면서 아침저녁의 선선함이 예감되는 것이 아니라 가을의 싸늘함이 큰 걸음으로 성큼 찾아온다. 그래도 가을은 터져 산화할 것만 같던 몸을 옹송거려 식혀 준다. 부디 이 가을에는 결실도 많아 우리의 삶이 풍성했으면 좋겠다. 축복 속에서 젊은이들은 짝을 맞춰 결혼을 하고 사랑스런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가지게 되면 좋겠다. 더 이상 외톨이로 지내지 않고 더 이상 아이 없는 가정으로 고독한 안락을 구하지 않게 취업의 문도 활짝 열리는 계절이면 좋겠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 청첩장을 받아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두었을 것이다. 결혼식은 주로 휴일인 주말에 있다. 휴일을 즐길 것인가, 결혼식장엘 갈 것인가. 조금은 망설이면서 두 가지를 다하기로 정하고 시간을 조정하며 집을 나선다. 복장이 좀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 벌쯤은 여분으로 차에 싣고 단정한 차림으로 식장을 찾아 나선다. 언제나 그렇듯이 바쁜 이는 늘 붐비는 엘리베이터 차례를 기다릴 수가 없어 허둥대며 계단을 둘씩이나 뛰어오른다. 땀이 밴 채, 홀을 확인하고 접수대를 찾는다.

    혼주가 없다. 손에는 하나씩의 봉투를 들고 접수대 앞에 늘어선 줄도 없어졌고. 이미 혼주는 기쁨 반, 슬픔 반, 게다가 번잡한 혼사로 정신마저 앗긴 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홀의 앞자리에 앉아 있다. 혼주로부터 꾹꾹 눌러 찍어야 할 ‘도장’은 나중에 찍기로 하고 봉투를 꺼내 축의금을 낸다. 결혼의 계절이면 지출이 여간 아니다. 5만원을 넣을 것인가, 10만원을 넣을 것인가 ‘축 결혼’이라 봉투에 내 이름자를 쓰면서도 아침 내내 혼주와 나의 거리를 가늠해보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평소에 입은 후의도, 앞으로의 만남에서 쬐게 될 볕뉘도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어느 정객처럼 억 소리 내기는 언감생심이다. 뇌물죄가 되기에는 애매하다는 명품 선물은 더더욱 아니다. 답례로 식권을 받을 것인지 현금을 받을 것인지를 잠시 망설이다 때가 지났지만 식권을 받는다.

    축하객들은 식이 시작됐는데도 더러는 담소를 나누며 더러는 여전히 홀 입구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다. 혼주가 중심이 되는 동아리의 합집합이라고나 할까. 한때 함께했던 동향, 동창, 친지, 일자리 동료들이 이산가족처럼 만나 넷(net)을 이루는 소란한 담론장이 된다. 혼주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만, 혼주를 중심으로 넷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눈도장은 필요하다. 신랑 신부보다 혼주를 인연으로 예식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정작 결혼 당사자에 대한 관심은 들었던 이름까지도 가물가물하다. 이러니 신랑 신부에게 보내는 축하는 건성일밖에 없다. 소란한 가운데서, 주례의 말씀도 들리지도 않고 축하객들마저도 말씀에 대한 관심도, 말씀을 더 들을 생각도 없다. 주례는 더욱 짧아지고 짧은 주례가 좋단다. 신랑 신부를 앞세운 예식은 식순에 따라 저 혼자 흘러가고, 축하객들은 휴일의 남은 시간을 향해서 저마다 서둘러 예식장을 떠나간다. 그래도 꾹꾹 눌러서 ‘도장’은 찍는다.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연회장에서 미리 식사를 마친 하객들은 사진을 찍고 있는 틈새로 혼주에게 인주를 듬뿍 묻혀 눈도장을 찍는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 한다. 결혼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좀 일찍 차려입고 예식장에 가자. 가서 진심으로 제대로 신랑 신부의 혼인을 축하하고 예식이 시작되면 경건한 가운데 주례 말씀에 내 마음을 얹어서 축복의 뜻을 전하자.

    이제부터라도 결혼식이 지난날들의 품앗이가 아니라, 나 중심의 눈도장을 찍는 자리가 아니라 신랑 신부를 동심원으로 하는 지인들의 넷을 만들어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아름다운 사랑의 공간으로 만들게 하면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일까.

    명형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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