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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야망의 세월’, 조작공화국의 예고편?- 오인태(시인·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5-08-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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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부터 1991년까지 KBS2에 방영된 드라마 <야망의 세월>과 2004년부터 2005년까지 MBC에 방영된 드라마 <영웅시대>를 기억하시는가.

    연보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90년부터 91년 사이에 한국항만협회 이사와 한국사회발전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92년 민자당에 입당해 그해 14대 국회에서 전국구의원으로 활동했으니 현대에서 퇴사하자마자 정계입문을 준비한 모양이다. 2004년부터 2005년에는 서울시장으로 재직한 걸로 나와 있다. 그러던 그는 2007년 5월에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고 8월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꺾어 마침내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이명박과 교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 나연숙 작가가 극본을 쓴 <야망의 세월>은 무명에 가까웠던 이명박을 현대건설 사원에서 시작해 회장에까지 오른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현대 내부의 시각은 영 다르다. 이명박과 현대건설 입사동기인 이상백 전 벡텔 부사장은 “현대건설에 이명박 신화는 없었다. 이 대통령이나 내가 입사할 때 이미 현대건설은 국내 5대 건설사였다. 현대건설의 성장은 전적으로 사주인 정주영 회장의 덕으로 봐야 한다. 모든 아이디어, 전략, 결단은 정 회장에게서 나왔다”고 회고한다.

    ‘금고를 빼앗으려는 폭도들에 맞서 홀로 금고를 지켰다’는 일화에 대해서도 정주영 회장은 “당시 이명박씨가 금고를 지킨 건 맞는 말인데 혼자 지킨 건 아니었다. 이명박씨는 금고를 지키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라며 “그 이야기를 드라마에서 이명박씨 혼자 다 한 것처럼 만들어 놔서 회사에서 여러모로 위화감이 많이 조성됐다. 드라마를 보면 조선소니 자동차니 다 이명박씨 업적으로 나오는데 그거 다 드라마 작가의 장난, 조작이다”라고 증언했다. ‘소양강댐 건설’ 이야기도 나연숙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란다. 소양강댐을 건설하면서 대통령과 담판을 짓고 댐 건설을 주도했던 사람은 이명박이 아니라 정주영 회장이었다는 얘기다.

    사실이 이런데도 이명박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나는 종업원이 90명뿐인 중소기업을 16만명의 대기업으로 키운, 세계가 인정한 CEO”라며 이미 두 편의 드라마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각인된 스토리를 환기시켜 마침내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BBK 등 수많은 의혹에도 말이다.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을 연기했던 유인촌은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부장관이 되어 “전 정권에서 임명한 기관장은 모두 알아서 물러나라”는 따위 거침없는 강성발언으로 이명박의 입과 행동대장 역할을 자처했다.

    어쨌든 선거에서 스토리텔링의 효과를 가장 톡톡히 본 정치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전의 정치 광고는 스토리텔링보다 주로 이미지메이킹을 기법으로 삼고 있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가진 이명박 후보가 실상이든 허상이든 오로지 이미지뿐인 박근혜 후보를 누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도 ‘한 컷의 이미지’에만 집착하며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스토리를 엮어내지 못하는 박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을 보면 그들은 아직 스토리텔링의 효력을 깨닫지 못한 듯하다. 아예 국민과 소통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시든지.

    <야망의 세월>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진 픽션, 곧 한 편의 드라마였을 뿐이다. 거기에서 그쳤다면 문제될 게 없다. 실제 선거에서 사실을 왜곡해 한낱 성공한 샐러리맨 정도의 사람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문제다. 허구세계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양 왜곡하는 것은 조작이요 날조다. 조작공화국은 이미 그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는가.

    오인태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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