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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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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추억 레시피 (1) 생일날 언저리에 먹었던 국수 한그릇

  • 기사입력 : 2015-08-27 13: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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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하면서: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단순히 끼니 때마다 허기를 달래고 배를 채우기 위한 행위에 불과하진 않은가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그릇의 음식에는 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일상 혹은 특별한 순간에서 마주했던 음식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꺼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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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치국수는 따뜻하게 먹어도 좋고, 차갑게 먹어도 좋다.
    지금으로부터 스물 하고도 몇 해 전 8월 1일, 무더위가 절정을 치닫던 여름의 한 가운데서 저는 태어났습니다. 그것도 아주 힘겹게요. 어머니는 탈진했다 다시 깨기를 반복하며 꼬박 사흘 진통을 겪었습니다. 갓 태어난 제 몸무게는 2㎏을 겨우 넘겼답니다. (물론 지금은 지나치게 건강합니다.) 뭐 이렇게 제 생일은 8월 1일이 됐습니다.

    (기억에는 없지만) 가족들과의 조촐한 생일파티를 몇 차례 한 뒤 꼬꼬마 초딩이 된 어느 날, 같은 반에서 생일을 맞은 친구가 '초대합니다'로 시작하는 글이 적힌 색종이를 내밀며 쓰여진 날짜에 맞춰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는겁니다. 친구집에 갔더니 뽀얀 생크림 케이크가 상 한 가운데 놓여있고, 당시 유행했던 물방울 모양의 김밥부터 시작해서 온갖 맛있는 음식들이 예쁜 접시에 놓여있는 겁니다.

    생일잔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몇 달 뒤에 있을 '내 생일잔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게 됐습니다. 8월의 첫 날, 내가 초대한 친구들이 나에게 선물을 주고, 내가 유일한 주인공이 되는 그 찬란한 순간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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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도 생일이 가까워 오면 잔치국수를 먹게됐다. 그리고 알게됐다. 생일이 다가왔음을.
    생일을 며칠 앞두고 손으로 쓴 초대장 대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름방학 중이었으니까요. 어쨌든 전화를 걸어 '생일날 우리집에 와달라'고 했는데, 모두의 답이 똑같았습니다.

    '미안해. 가족끼리 휴가 가.' 그러합니다. 8월 초는 무더위의 절정. 휴가 극성수기.

    모두에게 거절당하고 와장창 깨진 환상과 함께 홀로 남겨져 절망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매년 비슷한 패턴이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새 무뎌져서 생일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됐습니다. 성인이 되고나서는 친한 친구들 몇 명이 모여 밥 한끼하는 걸로 '퉁'치게 됐죠.

    그래서인지 생일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면 머릿 속을 한참 뒤적거려야 합니다. 오히려 생일 즈음 더운 날씨에 달아난 입맛을 찾기 위해 한 그릇 말아먹었던 '잔치국수'에 대한 기억이 강렬합니다. 평소엔 잘 찾지도 않는데 유독 생일이 가까워지면 꼭 한 그릇씩 먹게 되더군요.


    백석은 시 '국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제 머릿속에 남겨진 기억에 비해 사실 국수의 맛은 매우 단순합니다.

    희고 가느다란 면발은 국물과 함께 목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애호박과 계란지단 같은 색색의 고명들의 식감도 비슷하지요. 멸치로 육수를 낸 국물 역시 담백합니다. 국수 한 그릇에 담긴 구성원 모두는 제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할 뿐 누구하나 튀려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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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으로 올라갈 것들. 당근과 애호박, 양파, 달걀지단은 곱게 채썰고, 잘 씻은 김치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양념에 조물조물 무친다.
    이렇게 소박하고 친근한 맛이지만 제대로 된 국물과 국수를 만들어내려면 꽤 많은 정성이 드는 음식입니다. 잔치국수는 그 이름에 걸맞게 정성이 깃든 잔칫상에서 정성껏 손님을 대접했으니까요.

    맛있는 잔치국수를 먹으려면 제일 먼저 깊은 맛의 육수를 우려내야 합니다. 약간 푸른빛이 돌면서 은빛깔을 띠고 있고, 등이 매끈하고 곧게 쭉 뻗어있는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끓여냅니다. 이 때 멸치는 찬물에서부터 우려내야 비린내가 나지 않습니다. 육수가 우러나오는 동안 채소로 고명을 만듭니다. 애호박과 당근, 양파는 곱게 채를 썰어 기름을 살짝 두른 팬에 달달 볶고, 계란 지단도 부쳐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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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씻은 김치를 먹기 좋게 썰어 간장과 설탕, 매실액을 적당량 넣고, 김도 잘라넣고, 통깨로 뿌려 조물조물.
    저는 김치 고명을 조금 독특하게 넣어 먹습니다. 우선 잘 익은 김치를 물에 씻어 양념을 제거한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쫑쫑 썰어줍니다. 거기에 간장과 설탕으로 간을 맞춰줍니다. 거기에 김을 비슷한 크기로 썰어 넣습니다. 먹다 눅눅해진 김도 여기서는 대환영입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둘러 조물조물 무쳐주면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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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삶은 국수는 찬물에 박박 잘 씻는다.
    이제 마지막 단계 면 삶기가 남았습니다. 팔팔 끓는 물에 소면 한 움큼을 집어넣고 젓가락으로 잘 저어줍니다. 하얀 거품을 내며 끓어오르면 찬물을 한 컵 부어줍니다. 그리고 다시 끓어오르면 아마 다 익었을겁니다. 바로 찬물에 충분히 헹구고 물기를 빼줍니다. 그래야 국수가 매끄럽고 쫄깃해지니까요. 그리고 한 그릇 몫을 돌돌 말아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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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는 먹기 좋게 덜어 돌돌 말아둔다.

    그릇에 면을 넣고 고명을 차례차례 얹은 다음 옆으로 조심스레 육수를 부어줍니다. 자 완성!

    작게 한 모금 국물을 들이킵니다. 조금 싱겁네요. 간장, 다진마늘, 고춧가루 등으로 만든 양념장을 한 숟갈 넣어 휘휘 저어줍니다. 이제 고명과 국수을 한 젓가락 크게 집어 올려 그 위에 김치를 턱 하니 얹어 한 입 크게 먹으면 됩니다.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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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색의 고명을 얹은 잔치국수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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