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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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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20대 조폭의 고백(2) "내가 조직에 들어온 이유는..."

“문제아 낙인 후 계속된 범행에 갈 곳 없어”
중1때 오토바이 훔친 후 ‘낙인’

  • 기사입력 : 2015-08-2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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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훈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사고를 쳤다. 길에 있던 오토바이 한 대를 훔친 것이다.

    이로 인해 그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아버지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고, 학교에는 말썽 피우는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그리고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몇 해 위 선배였고, 동네에서 주먹깨나 쓴다고 이름난 ‘형들’이었다.

    소문을 들은 형들은 지훈씨에게 만남을 제안했지만, 겁나고 무서운 마음에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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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범죄와의 전쟁' 스틸컷/


    그런 와중에도 지훈씨는 또래들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세력을 넓혀 나갔다.

    창원지역의 소위 ‘학교 짱’들을 모아 직접 서클을 만들어 함께 어울려 다녔다. 그러다 이런 얘기가 형들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지훈씨는 형들에게 끌려가 ‘까불지 마라’며 몇 대 맞았다.

    이후 지훈씨는 “이래서는 안된다. 힘을 더 키워야겠다”며 서클에 가입하지 않은 짱들을 찾아가 결투 신청을 했다. 지훈씨가 이기면 상대방에게 말했다. “서클에 들어올래, 아니면 죽은 듯이 조용히 살래.” 지훈씨는 대부분의 싸움에서 이겼고, 상대방 역시 대부분 서클에 합류했다. 그렇게 규모가 커진 서클 친구들과 온갖 비행을 저질렀다.

    학교 친구들을 괴롭혀 돈을 뺏기도 하고 물건도 훔쳤다. 주위 형들이 하는 걸 보고 신기해서 ‘본드’도 해봤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미성년자라는 것을 속이고 불법으로 등 전체에 커다란 문신도 새겨넣었다. 이미 구제불능으로 낙인이 찍히면서 학교는 더는 재미가 없어 그저 벗어나고 싶었다. 가출한 친구들이 많다 보니 그들을 따라 계속 밖으로 겉돌고 크고 작은 범죄를 일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알고 보니 폭행, 상해, 공갈, 협박 등 재판이 7개나 잡혀 있었다. 집에 잘 들어가지 않으니 뒤늦게 알게 됐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소년원에 갔다.

    소년원에서 나오니 그는 이미 일대에서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일종의 ‘훈장’을 하나 단 셈이다. 형들은 그에게 재차 만남을 제안해왔고,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나갔다. 형들은 “자기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직접 마주한 형들은 세고 멋있어 보였다. 이 형들이라면 믿어도 될 것 같았다.

    그는 환상을 품고 제 발로 ‘조직’에 들어갔다. 누구의 강요도 없었다. 계속해서 범행을 저지른 지훈씨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고,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됐다. 단, 형들은 제외하고.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준 형들에게 의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고작 열일곱이었다. 지훈씨는 “나이도 어린데 밑바닥부터 고생해보자 결심했어요. 7개월 동안 천원짜리 한 장 구경 못 하고 일했지만 그래도 ‘건달’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어요”라고 했다.

    지훈씨 같은 막내급들은 10명 정도 원룸에서 함께 지냈다. 그리고 형들이 시키는 대체로 위험을 무릅쓰는 일들을 했다. 단속을 피해 밤에 불법게임기를 옮기고, 더 윗선의 형님들이 도박을 할 때 망을 봤다. 그리고 대출사기를 통해 빼돌린 돈을 인출해오는 역할도 했다.

    그러나 평생 자신을 책임져 줄 것 같았던 형들은 오히려 그를 사지로 내몰았고 결국 환상은 깨졌다.

    그는 “어리고 철없으니까 나를 무서워하는 것도 멋있어 보이고, 남자라면 빠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은 기억이 없어요. 미래도 없고”라고 말했다.

    김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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