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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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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8) 동요‘산토끼’와 창녕 고장산 가는 길

산고개 고개를 넘던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갔느냐

  • 기사입력 : 2015-08-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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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요 ‘산토끼’의 배경이 된 창녕 이방면 고장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풍금소리가 교실에 울려퍼지면 아이들은 입을 쫑긋 모아 ‘산토끼’를 힘차게 부른다.

    비록 세월은 흘러 그 교실, 그 풍금, 그 아이들은 볼 수 없지만 어릴적 친구들과 함께 부르던 동심(童心)은 우리들 추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부르는 국민동요 ‘산토끼’(작사·작곡 이일래).

    풍금소리에 맞춰 부르던 산토끼의 고향을 찾아 나서는 길이 아리랑 길이다.

    고개고개를 넘어 산토끼의 고향 창녕군 이방면 안리마을에 이르면 대나무와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기와집이 고즈넉한 시골 풍경의 멋스러움을 간직한 채 길손을 맞는다.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듯 마을 곳곳의 아름드리나무는 더위에 지친 길손에게 그늘을 내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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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동요 작곡집 영인본(1975년)에 실린 작품 '산토끼'.
    산토끼의 고향 이방면 ‘이방초등학교’와 배경이 된 ‘고장산’.

    산토끼와 음계가 그려진 학교 앞 담장은 이곳이 산토끼의 고향임을 알려준다.

    방학을 맞은 텅 빈 교정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서자 아담한 모양의 학교 건물과 함께 ‘산토끼 노래학교’라는 대형 글귀가 눈길을 끈다.

    국민동요 ‘산토끼’를 작사·작곡한 고 이일래 선생(1903~1979)의 흉상과 노래비, 그리고 동요비가 세워진 교정은 아늑함과 고요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맞은편 학교 벽면에는 국민동요 ‘산토끼’의 탄생 배경과 이 선생의 음악세계, 조선동요 작곡집에 관한 내용들이 꼼꼼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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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일래 선생의 흉상이 세워진 창녕 이방초등학교.
    동요 ‘산토끼’는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이방보통학교(현 이방초등학교)에 근무했던 이일래 선생은 딸 명주(당시 1세)양을 안고 학교 뒷산인 고장산에 올라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던 중 앞에서 산토끼가 ‘깡충 깡충’ 뛰노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 선생은 ‘우리 민족도 하루빨리 해방이 돼 저 산토끼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가락을 흥얼거리다 집으로 돌아와 오선지에 곡을 만들어 넣고 가사를 붙여 동요 ‘산토끼’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처음 동요를 만들 당시에는 ‘산토끼 토끼야 너 어디로 가나 ♪/ 깡충깡충 뛰어서 너 어디로 가나 ♪/산고개 고개를 나 넘어 가-서♪/토실토실 밤송이 주우러 간단다♪/’(1938년 조선동요 작곡집과 1975년 조선동요 영인본에 실린 ‘산토끼’ 노래 가사)로 작사됐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부르기 쉽고 편하게 노랫말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1998년 지역문학연구 제3호에 게재된 김봉희씨의 ‘이일래 동요연구’편을 보면 이 선생의 동요는 형식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고유의 오음계 율격을 따르고 있어 민족적 정서와 친숙하며 의성어와 의태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동요의 리듬감을 살려내고 있다고 말한다.

    또 노래는 어린이의 친근한 소재를 어린이의 언어로 어린이의 마음을 그려내고 있는 순수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움직임이 크고 동적이며 경쾌한 동요를 지향하고 있어 선생의 동요를 들으면 깨끗하고 순수해져 마치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산토끼’는 쉬운 멜로디와 재미있는 노랫말 때문에 금세 퍼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처음 이방보통학교 전교생들이 배워 부르기 시작해 이웃 학교로 퍼져나갔고 마침내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산토끼를 부르면서 일제시대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과 민족혼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산토끼’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산토끼’가 세상에 널리 알려져 불리기 시작하면서 일제는 민족혼을 일깨우는 불순한 노래라는 트집을 잡아 이 선생의 작품 활동을 방해했다고 한다. 이에 이 선생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몸을 숨겼고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등 혼란한 사회 분위기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 갔다. 이 와중에 동요 산토끼는 음악교과서에 무명곡으로 실렸고 누구의 노래인지도 알지 못한 채 불렸다. 그러다 이 선생의 친구가 보관하고 있던 1933년 발간 이일래 선생의 ‘조선동요 작곡집’ 영인본(복사본)이 1975년 나오면서 뒤늦게 그의 노래임이 밝혀져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동요 산토끼는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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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장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이방마을.
    동요 ‘산토끼’의 배경이 된 ‘고장산’은 인근의 나지막한 앞동산이다. 80여 년 전 이방보통학교가 어느 방향을 보고 자리를 잡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뒷동산이 아닌 앞동산이다. 걸어서 30여 분이면 정상에 오르는 고장산은 옛길은 사라지고 지금은 시멘트 도로가 흙길을 대신하고 있다.

    경사진 언덕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눈앞에 숲으로 둘러싸인 이방면 안리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드러나고 고장산을 배경으로 둔지산, 말산, 듬밀산 등 첩첩이 쌓인 나지막한 산들이 펼쳐져 있다.

    이마에 맺힌 땀도 식힐 겸 바위에 걸터앉아 온화한 모습의 이일래 선생이 딸을 안은 채 산토끼를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일제의 탄압이 얼마나 심했으면 산토끼가 뛰노는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해방과 자유를 갈망했을까?’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 힘없는 백성이 겪어야만 했던 고초, 이런저런 생각에 가슴이 시려옴을 느낀다.

    파란 하늘에 산토끼 모양의 하얀 구름이 뛰어가듯 바람에 밀려간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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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토끼 노래동산은

    2013년 11월 산토끼의 배경이 된 고장산 일원에 ‘산토끼 노래동산’이 문을 열었다.

    이방초등학교와 고장산 중간에 자리 잡은 ‘산토끼 노래동산’은 4만9910㎡ 규모에 산토끼 동요의 탄생 배경과 환경의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는 ‘산토끼 동요관’, 토끼 체험이 가능한 ‘토끼 먹이주기 체험장’, 각종 토끼들이 모여 있는 ‘산토끼 쉼터’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테마별로 구성된 산토끼 동화마을의 산토끼 전시체험관과 산토끼 서식환경체험관, 이일래 선생 기념관, 산토끼 동요감상실, 생태환경 전시관 등은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외에도 이일래 선생이 딸을 안고 산토끼를 바라보는 모습을 본뜬 ‘산토끼 노래발상지’, 미로정원, 롤링미끄럼틀 등 다양한 시설들로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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