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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민낯의 ‘자기’를 보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김명찬(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5-08-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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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 동안 성 관련 범죄들을 심심치 않게 언론에서 접하게 된다. 한 지검장이 ‘공연음란’ 행위로 공직에서 물러났고, 유명 국립대학교의 저명한 교수이며, ‘영향력 있는’ 학자가 성추행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또 그 대학 출신 조교가 ‘도촬(도둑 촬영)’을 하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들은 대부분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우수함’과 ‘뛰어남’을 인정받는 계층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이런 불쾌하고 거론하기 싫은 일들이 잊을 만하면 반복적으로 상기되는 것일까. 그간 흔히 ‘사회 지도층’으로 불리는 이들의 성추문이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기관들의 ‘성희롱 예방교육’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나, 이러한 교육적 장치가 문제 해결에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우리는 어떤 해결책을 찾아가야 할까.

    정신분석학의 지류 중 하나인 ‘자기심리학(self-psychology)’에 따르면 성적 문제의 배경에는 ‘깨어진 나’가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사려 깊은 관찰과 임상, 프로이트의 이론을 면밀히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치료 이론’을 개발한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인간은 육체적으로도 태어나지만 심리적으로도 태어나고 성장해야만 건강한 사회적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리적으로 태어나고 성장한다는 것은 부모가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아이의 ‘욕구’를 ‘지지’해 주고, ‘좌절’에는 ‘위로’를 줄 때 차차 일어난다.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지지와 위로가 누적될 때 아이의 ‘자기(self)’가 태어나고 건강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성장했을 때 아이는 타인에게 건강하게 ‘상호의존’하고 정서적으로 친밀한 교류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욕구를 지지받거나, 좌절을 공감받지 못한 채 성장할 경우에는 ‘자기’는 깨어지고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심리적으로 비어 있는 ‘자기’로 살아가게 된다. 한마디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삶이 아닌,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들의 일부는 주변 사람들의 눈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성공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것만이 ‘자기’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좋아서 성공했다기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너무 ‘초라하고’, ‘보잘것없어지는’ 상태에 처하는 것이다. 자기 욕구를 지지받는 대신에 부모나 친지들의 기대를 충족해야 하는 존재로 살아가느라 ‘자기(self)’를 확립하지 못한 것이다. 겉으로는 대단한 나지만, 속은 비어 있는 ‘불안한 나’인 것이다. 겉과 속의 불일치가 커질수록 이러한 혼란과 공허는 더욱 깊어진다. 이러한 상황, 무력감과 공허를 경험하는 사람은 자기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중독’을 택할 수 있다. ‘섹스’, ‘돈’, ‘약물’, ‘음주’, ‘쇼핑’ 등에 중독된 삶을 살 때, 인간은 찰나이지만 공허를 벗어나 자기가 살아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자기를 모르고, 타인이 인정하는 나로 살아오는 동안에 생기를 잃고, 즐거움을 잃은 사람이 궁색하게 자기의 생기를 확인하는 방식 중의 하나가 ‘성적 일탈’이 되는 셈이다. 자기를 확인하고 싶은 깊은 허기를 채우느라 바빠,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수치심과 고통에 대해서는 둔감해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성공의 도구처럼 취급됐던 것처럼, 자기 주변의 사람들 역시 자기 만족의 ‘도구’로만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기의 삶과 주변인들의 삶 모두가 파괴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외적으로는 성공했으나, 내면이 불행하고, 비어 있는 사람은 어쩌면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을지 모른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취’라는 겉옷을 벗고, 민낯의 부끄럽고 초라한 ‘나’를 만나고 위로하는 공동체일지 모른다. 학력, 돈, 지위를 자랑하는 ‘유치하고’, ‘미성숙한’ 행동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로 살아가려는 소박하고 진솔한 ‘사회 지도층’이 필요하다. 그런 문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있어야 하겠다. 그럴 때 성취에 ‘자기(self)’를 희생당한 이들의 슬픈 ‘범죄’가 줄게 될 것이다.

    김 명 찬

    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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