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병 물리면서 다 크도록 키운 개가 없어졌다
도둑으로부터 주인 집 지켜내야 했던
버겁고 힘든 시간 가볍게 털어버리고
복날 하루 앞둔 저녁 무렵
짖지도 않고 사라졌다
도둑맞아 벌써 어느 놈 뱃속에 들어갔는지
혀 끌끌 차며 대문 밖 나가시다 하는
아버지의 혼잣말
그 놈 제 발로 걸어 나갔다면 잘 나갔다
버리지 못하는 무거운 짐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지 신세나 내 신세나
더 늙어 늦기 전 앞뒤 생각 없이
벗어던질 때도 됐지
한 치 흐트러짐 없으시던 팔순의 뒷모습
외롭게 풀썩 내려놓으신다
☞ 짐은 거멀못이다. 삶이라는 건축물에 나를 붙박아주는 거멀못. 짐은 버팀돌이다. 세월이라는 물살에 쓸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버팀돌. 이 ‘짐 지기’의 역설이 인생의 비밀이 아닐까? 새끼 때부터 키워온 개의 죽음을, 주인집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으로 치환하는 아버지의 인식은 뼈아프다. 아버지의 삶은 곧 아버지의 짐이었음을 아버지는 알고 계신다. 더 이상 짐 지지 않을 때 세상을 앙버틴 다리가 풀썩, 꺾어진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계신다. 어느 새 팔순이다. 언제 이렇게 먼 길을 짐 지고 왔는가? 마침내 짐을 벗어던져야 할 때도 멀지 않았음을 아버지는 문득 깨달으신다, 외롭게…! 조예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