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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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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왕십리- 권달웅

  • 기사입력 : 2015-09-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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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초겨울 역마다 서는 완행열차는 경상북도 봉화에서 청량리까지 아홉 시간이나 걸렸다. 어머니가 고추장항아리 쌀 한 말을 이고 내린 보퉁이에는 큰 장닭 한 마리가 대가리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이십오 원 하는 전차를 탔다. 사람들은 맨드라미처럼 새빨간 닭 볏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았다. 나는 닭대가리를 보퉁이 속으로 꾹꾹 눌러 넣었다. 아무리 꾹꾹 눌러 넣어도 힘 센 장닭은 계속 꾹꾹거리며 대가리를 내밀었다.

    빨리 전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손바닥에서 진땀이 났다. 전차는 땡땡거리고 가도 가도 왕십리는 멀기만 했다.

    ☞ 객차에서 아홉 시간을 시달린 어머니가 고추장 항아리와 한 말이나 되는 쌀을 이고, 보퉁이 속에 살아있는 장닭 한 마리를 들고 역에 내리신다. 객차에서 또한 아홉 시간을 시달린 장닭이 맑은 바깥 공기가 그리워 보퉁이 밖으로 모가지를 내민다. 어머니의 손에 이윽고 비틀리어 축 쳐질 그 모가지. 서울 유학 생활에 축난 아들의 몸보신을 위해 신선도 유지의 목적으로 산 채 이송된 그 모가지. 그 모가지가 그런데, 철없는 아들은 부끄럽다. 촌스럽고 민망하다. 꾹꾹 눌러 넣는 손아귀를 꾹꾹거리며 받아내는 장닭의 대가리는 어머니의 머리에 인 고추장항아리와 쌀 한 말의 무게만큼은 힘이 세다. 젊은 아들의 손바닥에 진땀이 나게 할 만큼은 힘이 세다.

    지금은 아득히 설화가 된 그 힘, 눈물이 된 그 힘, 서러움이 된 그 장닭 대가리의 힘이 새삼 손바닥 사이로 살아 오른다. 가도 가도 이르지 못할 ‘어머니’라는 대륙…. 조예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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