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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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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생존기] 김재경 (2) 스물일곱, 빨간펜 선생님이 생겼다

  • 기사입력 : 2015-09-15 10: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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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의 경찰서 형사계, 교통조사계 당직팀에는 이따금 평화가 찾아왔다. 평화로움은 사건·사고가 없다는 것을 뜻했고, 이는 취재와 기사를 써볼 기회를 한 번 잃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섭섭함은 사치였다.
     
    선배가 말했다. '보도자료 좀 보내줄까?' 머뭇거리는 것도 잠시, 말이 끝나자마자 아파트화재, 점포화재, 조선화재 등 각종 화재 사고가. 상습절도, 살인미수, 동반자살, 보이스피싱 등 각종 사건이 발생 시기와 장소에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졌다. 보도자료는 이날을 시작으로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인쇄해서 종이로 건네주거나 메일 또는 SNS로도 받았다.
     
    하나의 보도자료도 '기자'가 쓴 기사로 써내는 것은 어려웠다. 내가 쓴 글을 선배에게만 보이는 것인데도 책임감이 느껴졌다. 선배는 내가 작성한 기사를 꼼꼼히 읽었다. 한 손엔 빨간펜을 들고.

    메인이미지
    빨간펜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가슴 아픈 흔적들.

    기자에게 받는 '기사 바로쓰기 과외'가 시작된 것이다. 선배는 먼저 '물론 100% 정답은 없어요'라며 친절하게 양해를 구했다. 친절했던 선배와는 달리 빨간펜은 나에게 친절하지 못했다. 빨간펜은 무차별하게 그어졌고 막을 방법은 없었다. 선택어휘와 문맥뿐 아니라 때로는 기사의 주제를 지적받기도 했다. 내가 쓴 기사가 지적받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빨간펜 표시가 줄어들 때쯤 나는 현장 취재를 다닐 수 있게 됐다. 무작정 기자실에서 벗어나 현장을 취재하면 기가 막힌 기사 하나를 써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때마침 창원천 주변이 방치차량으로 번잡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만큼 방치된 차량은 많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미 보도된 기사로 조치가 이루어진 뒤였다. 한발 늦은 것이다.
     
    그 이후로도 현장 취재로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녔지만, 아직 기사 하나를 완성하지 못했다. 보도할 가치가 있는, 온전한 기사 하나를 작성하기는 쉽지 않았다.
     
    선배는 '항상 주변을 잘 둘러봐라'고 조언했다. 내 눈앞에 보이는 불편은 곧 시민들의 불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 기사 대부분이 일상에서 보이는 사소한 것들, 불법 현수막이나 볼라드(자동차 진입방지 장애물)와 같은 것이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것들이 기사가 될 것으로 생각도 못 했고,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잡지 못했었다. 나는 '수습기자로 더 배울 수 있도록 시간이 멈췄으면…'하는 생각도 들었다. 배울 게 너무 많은 지금의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

    김재경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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