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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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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생존기] 도영진(2) 달디단 소주를 꿈꾼다

  • 기사입력 : 2015-09-15 11: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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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개월의 수습 기간 가운데 절반이 지났다.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할 게 수없이 많다. 우리를 잘 가르쳐주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선배들이 있어 든든하고 감사하다.(무섭기도 하다) 선배들의 헌신과 우리의 노력이 하루하루 쌓이는 나날들이다. 그렇게 우리는 기자로 '만들어 지고 있다.' 크게는 저널리즘의 대의에 복무하는 일을 하기 위해, 작게는 수습 기간이 지났을 때 1인분의 몫을 잘 해내기 위해.
     
    만들어 지는 시간을 초절정으로 압축하면 '좋은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좋은 기사를 써야 결국 좋은 기자다. 어떻게 좋은 기사를 만들 것인가? '암중모색'하지만 수습 절반이 흘러도 쉬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인사말고는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수습 5주차 무렵. 길을 걷다 건널목에서 우연히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가 작동이 되지 않는 것을 봤다. 시각장애인들의 보행 편의를 위해 설치한 기기가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사람들의 관심과 행정당국의 조치도 끌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기사가 될 것 같았다. 호기롭게 선배한테 말씀드리고 혼자 취재를 했다. 먼저 음향신호기에 대해 공부하고 도로로 나갔다.
     
    주요 건널목의 음향신호기 작동상태와 설치 위치 등을 점검했더니 곳곳에서 아예 작동이 안 됐다. 이거다 싶었다. 창원시에는 음향신호기가 몇 개소에 몇 개가 설치돼 있는지 점검한 후 몇 개가 고장 났는지까지 파악했다.
    다 쓰고 나니 발품을 판 기사라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선배는 더운 날씨에 수십 개를 직접 확인하느라 수고했다고 했지만 뿌듯한 마음은 채 몇 분 이어지지 않았다. 시각 장애인의 보행 편의를 위한다면서 정작 시각장애인 한 명을 만나지도 못했고, 관련 단체의 인터뷰 한 줄도 얻어내지 못했다. 그나마 한 취재도 꼼꼼하지 못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하는 기사인가? 노트북을 덮고 나니 그런 확신마저도 함께 사라졌다. 밥을 지으려고 했으나 죽을 쑨 경험이었다. 차디찬 소주에 아픈 기사를 말아 넘겼다.
     
    밥을 지으려고 하다가 죽도 밥도 안된 경험도 있었다. 혼자 주말동안 취재해 취업난에 허덕이는 도내 대학가의 풍경을 담아봤다. 20대 청년들을 많이 인터뷰했다. 나도 온몸으로 그 시기를 뚫고 나왔기에 그들이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니 내처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 마음들을 기사에 담았다. 여기에 더해 길어지는 취업준비에 웃지 못할 다양한 '족'들이 등장했다는 내용도 함께 넣었다. 마음이 너무 앞섰던가. 기사의 핵심도 없고, 현장감도 떨어졌으며 신선하지도 않았다. 인과관계도, 의미도, 방향성도 없었다. 아픈 기사를 안주로 또 한번 차디찬 소주를 털어넣었다. 인사만큼 기사도 얼른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앞으로도 어둠 속을 더듬어 한 발 한 발 이 길을 걸어가겠지만 기자로 '만들어 지고 있는' 이 날들이 나는 사실 행복하다. 오랜 시간을 걸어와 서게 된 감격스런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한 발짝씩, 그러나 쉬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가겠다. 밥을 지으려다 죽을 쑤기도 하고, 죽도 밥도 아닌 걸 만들어 내는 날도 지나가면 나도 언젠가 선배들처럼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 독자들께 드릴 수 있겠지. 그럼 달디단 소주도 선배한테 사달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쓰디쓴 노력이 필요하다. 으랏차차 내일도 화이팅이다!!!!

    도영진 수습기자
     

    메인이미지9월 첫째주 일요일. 도내 한 대학 내 까페 안에 까치 한 마리가 들어와 앉아 있었다. 취재원과 인터뷰 하는 내내 고개를 내밀고 관심있게 인터뷰를 지켜봤다. 또 좋은 일이 생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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