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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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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 청춘블루스] 청춘 10호, 꿈 찾아주는 드림트래커 이하얀 씨

남의 꿈을 응원하는 꿈의 조력자를 꿈꾸다
행복을 찾아 안정된 현실을 탈출

  • 기사입력 : 2015-09-22 19: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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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세요?

    세계 230여개 나라 중 이곳 대한민국, 그중에 경상남도, 그 안에 창원에 모여 살고 있는 108만 인구들은 과연 얼마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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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트레커(DREAM TREKKER) 이하얀씨가 '꿈과 나, 여행'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사소한 호기심으로 넘길 수 있지만 ‘행복’이란 단어에 민감한 나는 궁금증을 풀고 싶었어요. 무작정 설문지를 돌렸죠. 그 결과 ‘창원의 행복도’는 5.5점, 10명 중 6명이 안 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당신은 무엇에 행복을 느끼시나요? 스펙, 돈, 성공, 혹은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 제 이야기를 한번 들어주세요.

    저는 꿈과 행복을 찾아 여행하는 드림 트레커(Dream Trekker) 이하얀입니다.

    ▲공부밖에 모르던 엄친딸= 학창시절의 나는, 수줍음 많고 조용한 아이였어요.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살림에도 나와 동생들의 교육을 위해 힘쓰시는 부모님을 보며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고 생각했죠.

    수업시간에도 공부, 쉬는 시간에도 공부, 집에 가서도 새벽 2~3시를 넘기기 일쑤였죠.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시험 날 과민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했어요.

    여기까지 듣고 나면 전교 1등쯤 했겠구나 싶겠지만, 사실 점수는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반전이죠.

    공부밖에 모르고 질서와 규범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해진 것을 열심히 하려 했던 나는 남들 눈에는 모범생으로 보였겠지요.

    ‘왜 나는 이하얀일까’를 고민하던 사춘기를 지나면서 자아가 조금씩 뚜렷해지더군요.

    나는 나보다는 남들에게 비친 내 모습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고, ‘목사님의 딸이니 항상 반듯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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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얀씨.



    이런 저런 스트레스로 언어장애까지 가졌던 나였으니까요.

    수능시험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대학도 목표에 미치지 못한 곳으로 갔어요.

    그런데 자칫 패배주의에 젖을 수도 있었던 대학진학이 오히려 나의 인생에 전환기가 되었어요. 내 길을 찾는 계기가 됐죠.

    남들의 시선보다는 나의 기분에 초점을 두고 조용히 있기보다는 나서는 것을 선택했어요.

    언어장애를 극복하고 활발하고 적극적인 이하얀으로 재탄생했죠.

    덕분에 대학에서도 재미있게 캠퍼스를 누볐고, 특유의 집념으로 석사 학위까지 따며 서울의 제약회사에 당당하게 취업했어요.

    그때 제 나이 24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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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젊음과 월급이 맞바뀌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직장 생활 2년차, 일은 재미있었어요.

    3년차로 접어들자 상념들이 고개를 들었어요. 문득 ‘내 젊음과 월급을 맞바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30살이 되기 전에 보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기도 했고요.

    물론 내가 녹록지 않은 서울 생활에 지쳤나, 회사를 나가서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도 했어요.

    나를 믿고 있는 회사 사람들을 떠나야 한다는 죄책감도 있었죠.

    그러나 한 가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인생은 한 번뿐, 지금 이 시기를 넘기면 쭉 이곳에서 같은 고민을 하며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결국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국제해외봉사단에 지원을 했고 사직서를 냈습니다.

    아프리카 르완다는 새로운 세계였어요. 새로운 언어, 문화,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즐겼죠.

    다시 2년이 흘렀고, 고민은 또 찾아왔어요.

    ‘한국에서 나는 좋은 회사에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스펙인데, 왜 이런 곳에서 하루 한 끼 밥을 해먹는 것에 매달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나’ 싶었죠.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꿈을 좇아 열심히 살았는데, 왜 정작 행복하지 못했을까?’ 그 답은 자전거 택시 드라이버였던 르완다 친구가 해줬어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자전거를 탈 수 있기에 밥을 먹지 않아도 좋다는 그 말, ‘아…!’ 나는 깨달았어요. 르완다가 내게 중요한 것은 거기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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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야 꿈 여행자=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자유롭고 행복한 꿈꾸는 청춘이 되어 있었어요.

    귀국하면서 꿈과 창업을 다루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창원에 오자마자 아버지의 제안으로 창원의 작은 경영컨설턴트 회사에서 일하게 됐어요.

    마치 운명 같았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회사 일을 배우고 컨설턴트라는 직업에 나를 맞춰가다 보니 르완다에서 찾아왔던 나의 행복, 나의 꿈이 멀어져 가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행복한 것에 집중하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10개월을 고민한 끝에 올해 1월 ‘드림 트레커(Dream Trekker)’를 만들었습니다.

    내가 꿈과 행복을 찾았던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그들도 나와 같은 길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드림 트레커는 누구나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발견할 수 있다는 목표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꿈과 지혜를 나누고 자신의 행복과 꿈을 찾는 시공간인데요.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오후 꿈과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과 모여 스스로를 위한 강연을 하는 거에요.

    내가 세운 가치에 따라 살면 행복도가 높아지는데, 우리는 그것을 찾을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사춘기, 오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야만 하잖아요. 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는 시간을 갖도록 돕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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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청춘들에게= 지금 나의 삶이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은 아니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계속해야 하고, 생활을 하기 위해 회사일과 번역, 과외 등을 병행하고 있죠.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하루하루가 반복되고 있지만,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왜냐면 지금의 나는 매일매일이 아주 행복하거든요.

    나에게 귀기울인 결과 ‘코칭’(남을 돕는 일)이 내게 맞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일을 지금 하고 있으니까요.

    나에게 집중하면 되는데 청춘, 당신은 돈, 학업, 스펙, 취업, 연봉 등등 주변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 쓰면서 방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생각하고 꿈을 찾아보세요.

    어른, 사회가 정해주는 그런 꿈 말고 진짜 당신의 꿈을요. 60억 인구 중 당신은 단 한 명뿐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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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의 이하얀은= 앞으로도 나는 청년들, 청소년들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코치로 살아갈 계획입니다.

    30대에는 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40대에는 해외로 나가 행복을 접어두고 사는 사람들을 만날 거예요.

    50대에는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보고 싶고, 60대에는 힐링공동체를 만들어 잊고 있던 꿈, 잠재워둔 능력을 깨워 삶을 지속하게 하는 가치를 재탄생시키는 일을 할 거예요.

    내 꿈을 보고 누가 뭐라든 상관없어요.

    이건 나의 꿈이고, 나는 내 꿈을 위해 한발 한발 쉬지 않고 달려나갈 테니까요.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이 기사는 인터뷰를 토대로 기자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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