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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기자] 김유경기자의 스페인·포르투갈 편 (1)

  • 기사입력 : 2015-09-25 11: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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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만 있으라는 법 있나. 여기 경남 아니, 대한민국 벗어나 멀리 떠난 꽃다운 기자들이 있다. 직업 특성상 1년에 한두번은 해외취재를 나가는 이 축복받은(?) 직군에 속한 사람들. 그들은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았고 들었고 마셨고 먹었고 느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토록 넓어지고 깊어진 견문을 지면에 실을 수는 없었다.

    기자들이 보고 느낀 깨알같은 진짜 해외 탐방기를 쓰고자 한다. 그 나라의 문화, 역사, 먹을거리, 놀거리, 그리고 현지인들이 사는 이야기 그 모든 것에 관한. '꽃보다 기자'는 경남신문 편집국 소속 기자들이 기획취재를 위해 해외 체류 시에, 부정기적으로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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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편_방송인터넷부 김유경 기자/스페인·포르투갈 편
     
    (1) 마드리드에서 하몽(Jamon)을 먹다

    지난 9월 둘째주 일요일 새벽, 나는 인천국제공항의 에어 프랑스 체크인 코너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키의 반이 넘는 아메리칸 투어리스트 캐리어를 끌고 한 손엔 초록색 여권을 쥐고서.

    장시간 비행에 대비해 스킨과 로션만 바른 쌩얼에 사방으로 좍좍 늘어나는 스판바지를 입고 후드티를 걸친 모습. 솔직히 내가 봐도 좀... 여하튼, 나는 그날 파리를 경유해 스페인 마드리드로 떠날 예정이었다.

    휴가 떠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정신줄 놓고 울랄라!…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그렇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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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 직전에 한 컷. 일간지 기자단과 교수님 두 분, 언론진흥재단 관계자 등등.
    그날 나는 조금 풀이 죽어 있었다. 이 좋은 계절, 만리타국으로 떠나는 이유는 '일' 때문이었다. 마드리드는 그 곳에 국제공항이 있어 잠깐 들릴 뿐이었고 나머지 6박8일 동안은 카세레스, 코임브라 같은 산과 평야뿐인 스페인·포르투갈 국경지대로 이동해 취재를 해야했다.

    이번 기획취재의 주제는 '전세계 산림의 재앙인 소나무 재선충 창궐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하는 참으로 전문적이고 본격적이고 심오한 난제.(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의 90%이상은 소나무 재선충이라는 오묘한 존재에 대해 생전 듣도 보도 못했을 거다. 장담한다. 참고로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은 소나무에 기생하며 기주(寄主)를 서서히 말려죽이는 기생충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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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이비자(Ibiza) 섬에 가고 싶었다. 나체로 수영하고 밤마다 클럽데이를 벌인다는, 환락의 섬. 갈 수 있을 줄 알았다./연합뉴스/
    애석하게도 이베리아 반도의 소나무는 세비야나 바르셀로나, 리스본 같은 관광하기에 매우 바람직한, 반짝반짝한 도시에 서식하지 않았다. 재선충이라는 몹쓸 벌레에 감염된 앙상하고 메마른 소나무들은 가도가도 풀숲 뿐인 접경지대에 대거 몰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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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포르투칼 접경지대의 소나무숲.
    각설하고, 마드리드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고 먹은 첫 점심 메뉴가 스페인 대표요리 하몽(Jamon)이었다. 가이드는 일행을 마요르 광장(Plaza Mayor) 근처에 있는 'MUSEO del JAMON'이라는 식당으로 안내했다. 이름하여 하몽 박물관. 마드리드에서 엄청 유명한 맛집이라더니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식당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음식이 속속 나오는 도중에도 몰려든 사람들로 2층 계단에서 입구까지 줄이 늘어섰다. 1층엔 식당에서 취급하는 하몽을 판매하는 코너도 따로 마련돼 있었는데, 거기엔 더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그 질감이나 모양이 몽글몽글하고 몽실몽실할 것만 같은 어감(語感)의 '하몽'은, 사실은 조금 무시무시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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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몽아, 혹시 넌 이렇게 생겼니? /경남신문DB/
    버스로 이동하던 중 가이드는 우리에게 이런 밑밥을 던졌다. '바깥을 보세요. 상수리 나무가 많죠? 그것은 곧 좋은 하몽이 많다는 걸 뜻하지요.' 대체 뭔소린지. 하몽이 뭐길래? 감이나 배처럼 나무에 달리는 열매 같은 건가?

    하몽은 돼지 뒷다리의 넓적다리 부분을 통째로 잘라 소금에 절여 그늘에서 약 6개월~2년 정도 건조·숙성시켜 만든 일종의 생(生)햄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보통 식사 때 하몽을 얇게 저며 바게뜨나 샌드위치 빵에 끼워 먹었다. 특히 스페인 에스트레마두라·안달루시아 지역에서 순수하게 도토리만 먹여 키운 흑돼지로 만든 하몽을 최상급으로 친단다. 그렇군. 그래서 가이드가 상수리나무 운운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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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몽은 큰 접시에 잘 익은 메론과 함께 나왔다. 일단 색감은 좋다.
    우리가 그날 먹은 메뉴는 잘 익은 메론 위에 얇게 저민 하몽을 올린 거였다.(이름은 까먹었다. 구경하고 먹고 사진 찍고 한번에 너무 많은 작업을 수행하느라 무척 바빴다) 차가운 메론 위에 겉은 꾸덕꾸덕하면서도 속은 말랑한 하몽에 빵과 와인이 곁들어졌다.

    풍요의 땅에서 난 과일답게 메론 과즙은 설탕처럼 달았고 육질은 녹아내릴 듯 부드러웠다. 나이프를 들어 하몽을 잘게 썰어 입에 넣어봤다. 비릴 줄 알았는데 전혀 냄새가 없었고 고소하면서도 짰다.(스페인 사람들은 거기에 소금을 더 쳐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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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EO del JAMON' 외관.
    메론과 함께 먹었더니 나름의 독특한 향취가 났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익히지 않은 생고기라는 것, 곰팡이가 필 때까지 썩힌 썩은 고기라는 것, 그리고 숫제 소태처럼 짜다는 것, 그 모든 요소들이 비위를 상하게 했다.

    귀국한 뒤 하몽 맛있는 줄 모르겠더라고 하자 스페인에서 한달 가량 머문 적이 있는 지인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말 좋은 하몽은 끝내주게 맛있단다. 네가 먹은 게 품질이 별로인 하몽이거나, 네 입맛이 천상 시골 입맛인 거지.' 흥!칫!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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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EO del JAMON' 1층에 하몽을 사기 위해 북적이는 사람들. 그렇게 맛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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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엔 하몽을 이렇게 바게뜨 빵에 끼워 먹어볼 생각이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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