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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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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이 계절에 박경리를 생각해 보자- 박서현(수필가)

  • 기사입력 : 2015-10-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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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연휴가 끝났다. 손님처럼 찾아온 명절증후군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한 산악회의 미륵산 종주 산행에 합류한다. 빈 좌석 없이 45명이 빽빽이 들어앉은 차량이 중리IC를 빠져나가고, 창밖 들판의 벼들은 점점 푸른빛을 잃어간다.

    통영시 궁항마을 버스정류장 초입이다. 까슬까슬한 바람이 옷고름을 천천히 풀고 있다. 무가지에서 본 한 산악회의 산행코스에 ‘박경리 기념관’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급히 신청해 마지막 자리를 예약한 뒤, 몇 날을 고대한 여행이다.

    박경리 선생 하면 25년간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 작가로 유명하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민중의 삶과 한을 새로이 부각시켰고, 이로써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사람. 내게는 더욱 특별하다. 이즈음이면 그녀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가 있다. 오래전 어머니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어 마음도 달랠 겸 하동을 찾았더니 마침 토지문학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토지’의 배경지인 평사리 최 참판 댁을 둘러보고 돌아 나오는데 그가 떠올랐다.

    백발에 가까운 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묶고 텃밭을 가꾸는 사진 한 장이 축제 속에서 생각났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오로지 글과 함께하시는 일념과 험한 세상을 붓으로 헤쳐 가셨기에 그 뒤로도 존경심을 놓을 수가 없다. 글뿐 아니라 수수하고 평온하신 그 모습에서 어디선가 손짓하며 붙들기라도 하실 듯 시골풍이 배어 있던 내 어머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그날을 기억한다. 창원 용지공원에서 어린이 잔치가 있는 날이었다. 마침 가까운 친척의 어린이가 있어 티 없이 맑은 눈빛들을 마주하며, 덩달아 동심으로 함께했던 2008년 5월 5일, 선생이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슬픔을 잊지 못한다.

    이후 열흘 정도 지났을까. 친구를 승용차에 태우고 참배라도 해야겠다 싶어 세상을 떠난 그를 찾은 적이 있다. 그날은 봄비가 구슬프게 내렸다. 그래서인지 땅이 미끄럽고 질퍽한 그곳을 오르내리기가 무척 불편했으며, 묘소 뒤로 소나무들과 잡목들만 우거져 있어 나름 실망스럽기도 했다.

    이후 몇 년 만에 찾은 곳, 세월이 흐른 지금은 잘 다듬어진 공원으로 변해 있었다. 묘소 뒤쪽과 옆쪽엔 감나무의 홍시가 알 전구처럼 묘소를 밝히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시원한 정자에 올라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여유도 덤으로 본다. 공원엔 시비가 군데군데 세워져 있으며 소담스러운 야생화 홍접초가 눈길을 끌기도 하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야산, 푸른빛을 잃어가는 잔디 공원의 시비에 쓴 시 한 편이 눈길을 끌었다.

    글 기둥 하나 잡고 /내 반평생/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진정 내게 그런 것 없었고/스치고 부딪히고/ 아프기만 했지/그래,/ 글 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 - 눈먼 말

    한국소설사에서 큰 획을 그은 그가 붓을 붙들고 고뇌했던 부분이 여실히 나타난다. 그의 소설 ‘토지’는 또한 어떠한가? 구절마다 감정 서린 표현들은 몸속에서 피를 짜낸 흔적과 혼이 배어 있어 가볍게 읽어 내릴 수 없다.

    곧 토지문학제가 다가온다. 한 번쯤은 이 계절에 그를 찾아 떠나봄이 어떨까 싶다.

    박서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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