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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예정된 파국, 무너지는 교육자치- 오인태(시인·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5-10-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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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 학교급식 행정사무조사에서 도의원들에게 혼쭐이 나는 교육장들을 지켜보며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싶어 한숨이 절로 났다. 작정한 듯 연만한 교육장들을 몰아세우는 도의원에게 교육계 최고 원로를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도, 도민을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어떤 품격도 엿볼 수 없었다.

    이게 웬 봉변이냐 싶겠지만, 실은 경남도가 도교육청에 감사를 하려 들고 도의회가 도교육청과 지역교육청에 행정사무조사나 행정사무감사를 행사하는 건 예고된 일이었다. 도교육청의 예산을 심의 의결하고 행정사무감사를 맡아 오던 교육위원회가 없어진 탓이다. 교육자치제의 의결기구였던 교육위원회가 행정자치제의 의결기구인 도의회에 통합되더니 급기야 도의회의 한낱 상임위가 되어버린 결과다.

    한때 도의원과 따로 뽑았던 교육의원들은 도의회 안에서도 도교육청의 예·결산 심의와 행정사무감사를 전담해 ‘도의회 안의 교육위원회’로서 명맥을 유지했지만, 이제는 도의원 선거에서 선출된 일반 도의원이 상임위인 교육위원회에 배정받아 교육위원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위증하면 처벌한다”는 엄포와 모욕적인 인신공격 앞에 무참히 무너지는, 이 애처로운 장면은 교육자치제가 파국을 맞는 순간의 단면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나라 교육자치제는 미군정 때부터 61년 5·16군사정변으로 이태 정도 중단됐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폐지된 교육자치제의 부활 요구가 거세지자 박정희 정권은 64년, 이전의 시군 단위에 설치했던 교육위원회를 특별시와 광역시도 단위에 설치함으로써 오늘과 같은 광역 단위 교육자치의 기틀을 잡았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기 전인 이때의 교육위원회는 합의제 집행기구였다. 이 무렵 학교를 다니며 상장 한 장 받아본 이들은 기억하리라. 시상자가 ‘경상남도교육위원회 교육감 000’로 적혀 있던 걸. 그러다 91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고 지방의회와 함께 교육위원회가 구성돼 합의제 의결기구로서 집행기구인 교육감과 함께 20여 년간 교육자치제를 지탱하는 한 축으로 기능해왔다.

    교육자치제는 일반 행정에서 교육행정을 분리, 독립시켜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을 확립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특별시, 광역시·도에 설치돼 교육과 학예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기관이었던 교육위원회가 사실상 폐지됨으로써 도의회의 한 상임위가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이런 판국에 교육감 직선제 폐지가 거론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런 맥락이다. 새누리당이 한나라당의 간판을 달고 있던 때, 교육감 선출방식에 대한 당론이 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제로 기울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는 말도 안 되는 정치놀음이라 여겼지만, 이 지경이라면 현실적인 하나의 대안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이 방식을 따르면 교육감후보가 특정 정당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고 도지사후보를 낸 정당에서도 되도록 득표에 도움이 되는 교육감후보와 짝을 맞추려 할 것이니 도지사든 교육감이든 경쟁력을 갖춘 후보가 당선될 소지가 높아질 것이라는 데 우선 끌린다. 선거비용 절약은 말할 것도 없고 당선 뒤 협조관계 유지도 수월할 테다. 물론 지금처럼 주민이 직접 교육감을 선출하는 교육감직선제가 교육자치제의 취지에도 맞고, 주민대표성을 최대화하는 제도라는 건 분명하지만. 새누리당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교육감 임명제는 미군정과 유신 치하에서도 그 명맥을 유지해 왔던 교육자치제를 전면 부정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상이다.

    자동차세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기초자치단체에 내는 자동차세에 교육세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다들 아실 테다. 그런데 지금 그 자치단체들이 그동안 학교나 지역교육청에 지원하던 교육예산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하니 말이다. 이리 나오면 기초단체가 ‘한 푼’이라도 교육세를 거둘 까닭이 없다.

    오인태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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