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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생존기] 김재경 (4) 선배를 인터뷰하라

  • 기사입력 : 2015-10-05 15: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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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배를 인터뷰하라'는 특명이 내려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수습기자 교육을 마치고 '무엇이든 시켜만 주세요'하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돌아왔지만, 임무를 받은 동기와 나는 눈을 끔뻑끔뻑할 수밖에 없었다. 수습기자가 감히 선배를 어찌 인터뷰 하나 싶었다. 하지만 방송인터넷부에서 받는 교육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인터뷰는 디지털 시대 독자소통과 기자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목적으로, 편집국에 있는 모든 선배 기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풋풋한 수습기자의 젊은 감각으로 선배 기자 개개인의 특징을 잡아내어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담아오라는 것이었다. 방송인터넷부의 손을 거쳐 선배들을 차례로 SNS와 홈페이지에 소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10문 10답 인터뷰를 진행해 기반을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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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은하고 깊고 진했던 선배와의 인터뷰. 커피처럼 쓰기도, 아이스크림 처럼 달콤하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첫 인터뷰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기분 좋은 예감 속에 선배를 만났다. 이른 아침 카페에는 선배와 우리밖에 없었고 맞은편 스피커에서는 영화 라붐에 삽입된 리처드 샌더슨의 Reality가 흘러나왔다. 감미롭고 잔잔한 팝송이 흘러나오는 조용한 분위기는 인터뷰를 진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선배님. 인터뷰 당해보는 건 처음이죠?'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는 '보통 우리가 인터뷰를 가면 사전에 언질을 주는데 아침에 당장 인터뷰를 부탁하는 무례한 경우가 어딨나'며 '선배니까 다 해줄 거라고 생각했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선배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인터뷰는 시작됐고 감미롭고 잔잔했던 분위기는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우리 나름대로 고민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기자의 가장 큰 매력은', '기자에게 1면 톱 기사란', '앞으로 어떤 기자가 되고 싶나' 등 열 가지의 비슷한 질문들을 했다.

    인터뷰는 예정시간보다 길어졌다. 그런데도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응해주던 선배는 '근데 지금 하는 질문이 취지와 맞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어 '질문의 초점이 기자 직업에만 맞춰져 있지 않으냐'고 꾸짖었다.

    참다 참다 못해 인터뷰 대상자가 아닌 선배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인터뷰는 큰 아픔을 동반했다. 인터뷰 약속을 잡는 것부터 취지에 맞지 않는 질문지까지 모든 것이 미흡했다.


    우리는 놓쳤던 부분들을 짚어보고 방송인터넷부 선배에게 연락했다. 선배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하게 파악했다며 앞으로의 진행 방향과 인터뷰 약속이 잡힌 선배 기자들에게 물어보면 좋을 만한 질문거리를 얘기해줬다.

    이후로 이틀에 걸쳐 선배 기자 10여명을 인터뷰했다. 한 명 두 명 인터뷰를 반복하자 변화가 찾아왔다. 네 번째로 만난 선배에게 '별명 있어요?'라고 물었지만 이미 선배의 특이한 별명을 알고 있었고 다섯 번째로 만난 선배에게는 '혹시 소개팅해본 적은 있어요?'라고 물었지만 이미 소개팅을 자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섯 번째로 만난 선배에게는 '진짜 동안이십니다. 동안 기자의 장단점은 뭔가요'라고 물어볼 만큼 용감해졌다.

    다른 선배 기자들에게 첩보를 통해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얻었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알고 가는 게 많을수록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선배들의 솔직담백한 속내를 끄집어내며 인터뷰의 참맛을 느끼기도 했다.

    인터뷰를 위해 잠깐 시간을 내어주고, 점심을 사주고 또 따뜻한 커피 한 잔 함께 하며 흔쾌히 응해주었던 선배들 덕분이었다. 선배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났던 애정 어린 답변은 은은하고 깊고 진했던 커피처럼 선배의 풍미를 더 잘 느끼게 했다.

    인터뷰하러 가서 인터뷰를 당하기도 했던, 선배에게 보였던 미흡했던 모습을 이제 누구와 인터뷰를 해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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