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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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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당혹감’의 사회적 의미- 김명찬(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5-10-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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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입시철이다. 이 기간 동안 수험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적잖이 노력하게 된다. 학생들은 3년 또는 그 이상 준비해 온 학업 역량을 바탕으로 대학 입시 관계자들에게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호소해야만 한다. 그중의 한 가지 관문이 전공 교수들과의 면접이라 할 것이다. 평가자인 교수와 면접하는 시간은 부담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매년 면접을 하다 보면 안타까운 사례들을 많이 보게 된다. 복수의 교수들과 같은 또래의 친구들 앞에서 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긴 시간 침묵하거나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이다. 얼굴은 붉게 물들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미국의 저명한 상담학 교수이자 임상전문가인 루이 코졸리노 (Louis Cozolino)는 상담학의 실제를 뇌기반 연구를 토대로 재정립한 학자 중의 하나이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 ‘뇌기반 상담심리학의 이론과 실제(The neuroscience of human relationships)’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이 신체 반응을 통해 나타내는 ‘감정적 단서(emotional cues)’들이야말로 명확한 진화의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당혹감을 느낄 때 얼굴이 붉어지고, 눈동자의 동공이 커지며, 심장 박동이 빠르게 움직이는 그 모든 신체적 반응이 생존 반응을 높여주는 진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대개 ‘불수의적’이어서 자신의 의지로 통제되지 않고 다만 그 상황에서 나타날 뿐이다. 입시 면접장의 어린 학생들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반응은 열등함의 표시라기보다는 그 상황에 적합한 ‘생리적인 반응’일 뿐인 것이다.

    수험생이 면접 중 나타내는 생리적 반응들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본능적 인식과 그 과정에서 반드시 생존해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의 반영이다. 즉 ‘면접을 잘해서 꼭 합격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코졸리노는 안면 홍조, 동공 확장 등은 인간이 “관계에 참여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이러한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냄으로써 생존의 가능성을 높여 온 것이다. 안면 홍조나 동공 확장 등의 반응은 부끄러운 ‘열등한 반응’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긍정적 사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수험생의 면접 중 이러한 신체 반응은 잘하고 싶어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보면 된다.

    면접관은 수험생이 당황할 때 이러한 반응의 이면을 부드럽게 읽어준다면 좋을 것이다. “많이 떨리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 그런 것 같네요”와 같이 당황한 반응의 ‘정당함’을 읽어 주되, 그 이면의 좋은 의도-“잘하고 싶다”-까지 함께 읽어 준다면 이내 편안해지는 학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많이 떨고 힘들어 하는 학생일수록 사실은 더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밝히고 싶어 하는 학생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잘 가꾸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며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욕망이 있고,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긴장하고 당혹감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꼭 이루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이루지 못할까 봐 갖는 두려움이 공존할 때 인간은 당황하게 된다. 당혹감은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과 그 욕망을 이루고 싶어 하는 열의가 나타내는 반응인 것이다. 따라서 당혹감을 느낄 때는 애써 침착해지려고 하기보다는 자신 안에 건강한 소망과 욕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혹감을 지니고 면접장 안에 들어갈 수험생들의 건투를 빈다.

    김명찬 (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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