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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생존기] 김재경 (5) 쓰지 못했던 말

  • 기사입력 : 2015-10-12 16: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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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산부의 날(10월 10일)을 맞아 선배와 기획 기사를 준비하게 됐다. 주제는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으로 정해졌다. 선배의 조언을 듣고 서둘러 현장으로 뛰어나갔다. 뛰어나가면서(?)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은 주차구역 위반 단속에 따른 과태료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먼저 창원시 보건소로 향했다. 창원보건소가 청사신축으로 상남동에 있는 임시청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어서 주차장이 매우 협소했다. 주차구역이 아닌 곳에 주차할 정도로 차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서 근처에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그중 눈에 띄었던 것은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 딱 한 면만 비어있었다.

    비어있는 것이 기쁘기도 했고 ‘아니 이러다가 기사 안 되는 거 아니야?’란 생각도 들었다. 잠깐 기다려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한 대 들어왔다.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고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확인하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따뜻하구나’생각됐다. 보건소로 따라 들어가며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금은 둘째를 가진지 3주차가 됐다는 이희연(30·여)씨는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다”고 말했다. 그는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은 늘 주차돼 있고, 주차해놓고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면 남자 혼자 내리는 경우도 제법 많다”며 “때문에 주차장을 몇 바퀴 돌다 겨우 자리가 나는 곳에 주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메인이미지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 표지판을 유심히 봐주세요.


    주차선이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는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은 나에게 금남의 구역처럼 느껴졌는데, 유아 동반 없이 남자 혼자 어떻게 주차를 한단 말인가. 정말로 그럴까 의아했다. 경남도청과 창원시청 주차장에서 현실을 마주했다.

    실제로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 중이던 남자 운전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입구에 가깝고 좋은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면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이었다”며 “솔직히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주 주차하곤 한다”고 말했다.

    다른 운전자들은 어땠을까. 이미 주차를 하고 자리를 비워 만날 수 없었던 운전자에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신분을 밝히고 짧게 통화할 수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여성이었는데 너무나 당당한 목소리로 임산부가 아니라고 말했다.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은 벌금을 안내니까 자리가 비어있으면 스스럼없이 주차 한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전화를 걸어 물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임산부라고 주차를 못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은 이해해도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은 이해를 못 하겠다. 나는 여성이지만 나처럼 모든 여성이 임산부전용 주차구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의 말에 인터뷰에 솔직하게 응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야 할지, 이의를 달아야 할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이 왜 필요한지 임산부전용 주차구역 표지판에 그려져 있는 그림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을 이용하는 임산부를 한 명만 만나봐도 생각이 달라질텐데’라는 말을 이내 삼켜야만 했다.

    취재를 마치고 선배의 도움을 받아 기사를 완성했다. 하지만 ‘임산부를 위해 만들어 놓은 주차공간에는 임산부만 주차해야지’라고 쓰지 못했던 게 아쉬워 이곳에 대신 남겨본다.

    김재경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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