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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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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109) 고성 (19) 거류면 엄홍길전시관~벽방산 안정사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 안정사엔 고승들 체취 가득

  • 기사입력 : 2015-10-1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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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과 들판에 가을을 부르는 비가 내리더니 이내 여름을 보내는 찬바람이 가득하다. 세월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자연은 순리에 따라 나뭇잎이 색깔을 바꾸며 오색으로 산에 가을 옷을 입히고 있다.

    우리의 인생도 계절 따라 바뀌는 자연의 순리와 똑같다. 우리는 자연의 변화처럼 다양한 인연을 맺으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좋은 만남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지만 나쁜 인연은 악연이 되어 불행한 인연을 만든다.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인연을 만난다. 비 오는 가을날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합각정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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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방산에 위치한 안정사. 신라 무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오랜 역사를 가진 절이다.


    우연히 동막골이란 마을에서 20년째 수박농사를 짓는 김희수(61)씨를 만났다. 집에서 정성스레 차린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니 내고향 오지마을의 지인이었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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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홍길전시관


    ◆엄홍길전시관과 장의사

    가을이 가득한 고성들판을 지나 벽발산 벽암사로 가는 길에 마늘을 파종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도회지에 살다 보면 자연이 순환하는 이치를 잊고 벼가 크고 추수를 하는지, 마늘을 심는지 세상을 모르고 산다. 벽암사로 가는 길에 만나는 전나무 숲은 언제나 싱그러운 모습이다. 한적한 절집에 들어서니 인기척을 느낀 노스님이 문을 열고 반겨준다.

    지난번에 기사가 나오면 신문을 갖다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들렀더니 신도를 통해서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차를 한잔 하고 가라 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인근 거류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엄홍길전시관으로 갔다. 거류산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는 아침 등산에 나서는 사람들이 산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도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엄홍길은 1960년 9월 14일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나 3살 때 도봉산으로 이사했다. 엄홍길전시관은 산사나이 엄홍길, 신의 영역 히말라야, 16좌 완등의 신화, 함께 가는 히말라야, 에필로그 등 5개 구역이다. 엄홍길은 1988년 9월 에베레스트(8848m) 남서벽 등정에 성공하고, 2000년 7월 31일에는 K2(8611m)를 등정함으로써 히말라야의 8000m급 14좌를 모두 등정했다. 2004년 히말라야 얄룽캉(8505m), 2007년 5월 31일 로체샤르(8400m)를 등정해 세계 최초로 8000m 이상의 모든 봉우리를 완등한 대한민국 산악인이 됐다.

    또한 네팔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 교육과 복지를 지원하는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했고, 2004년 에베레스트 등정 중에 세상을 떠난 동료의 시신을 1년 만에 수습해 가족의 품에 안겨줬다. 네팔에서 산행 중에 세상을 떠난 셰르파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도 세우고 있다.

    고성군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대자연에서 배운 꿈과 희망, 용기와 도전정신을 일깨워 주기 위해 엄홍길전시관을 세우게 됐다. 위대한 한국인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긍지이고 행복이다. 즐거운 마음을 가득 담고 거류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쌍계사의 말사 장의사로 향했다.

    고성군 거류면 한복판에 우뚝 솟은 거류산(570m) 중턱에 위치한 장의사는 신라 원효대사가 선덕여왕 1년(서기 632년)에 창건해 6·25전쟁의 병화를 입었으며 1891년(고종28년) 성담화상이 중창했고 1917년 효봉스님에 의해 중건됐다. 1960년대 신도들에 의해 보광전을 중건했고 사찰의 뒤로는 기암괴석이 웅장하게 치솟아 울창한 수목과 더불어 산사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장의사의 중심법당은 보광전이다.

    보광전은 약사유리광여래를 모신 법당으로 유리광전, 약사전이라고도 부른다. 장의사 보광전에는 주존불인 석조관음반가상이 봉안돼 있었는데 현재는 보광전 해체공사를 하고 있었다. 절집 마당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가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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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의사 종각


    ◆안정사 대웅전과 만세루

    행정구역상으로 통영시 광도면 이지만 장의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벽발산 안정사로 향했다. 행정 지역명으로는 벽방산인데 불가에서는 석가모니의 제자 가섭존자가 벽발 즉 바리때(승려의 공양 그릇)를 받쳐 들고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벽발산이라 한다. 흔한 절집 이정표를 만나지 못해 지나치기 쉽다. 한국가스공사 통영생산기지 정문 반대 방향으로 길이 이어진다. 주차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을 등지고 보면 고즈넉한 숲속에 14기의 승탑과 비석들이 있다.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것이고 승탑은 고승들의 사리를 봉안한 일종의 공동 무덤이다. 절집의 역사가 전하지 않는 곳은 불탑이나 승탑에 있는 기록이나 양식을 통해서 가늠해 보게 된다. 장의사 승탑의 양식이 대부분 석종형이다. 석종형 승탑 양식은 조선시대에 유행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유구한 절집의 역사를 알기란 쉽지 않다.

    승탑전에서 잠시 머무르며 보니 승탑 하나하나에서 정진해 진리를 체득한 선사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소나무 그늘이 드리운 일주문을 지나면 커다란 돌 위에 누군가 절실한 염원을 담은 막돌탑이 있다. 해탈교 교각은 파손된 채 있었고 유난히 절집에서 많이 보이는 붉은 꽃무릇이 한적한 절집에서 반겨준다. 해탈교를 건너면 범종각이다.

    안정사는 대한불교 법화종으로 신라무열왕 1년(654)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한때는 14 방의 당우를 갖춘 전국 굴지의 사찰이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영조 27년(1751)에 다시 지었고, 1950년대에 끊임없이 중건해 법화종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 물이 흐르는 샘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두 계단을 올라서면 잔디가 예쁘게 단장된 마당 끝에 대웅전이 있다.

    안정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고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대웅전을 마주보고 있는 만세루는 조선숙종 12년(1686)에 지었고 헌종 7년(1841)에 고쳐 지었다. 만세루는 문 위에서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다락처럼 지은 집으로 앞면3칸, 옆에서 보면 2칸 규모다. 문루 기능은 없고 법회 장소와 종루로 사용했으나 종루는 새로 만들었다. 10여 개의 크고 작은 당우가 안정사를 아름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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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사 승탑과 비석


    ◆영산회괘불도와 안정사동종

    보물 제1692호 영산회괘불도는 화면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문수, 보현보살의 삼존입상을 가득 차게 배치하고, 석가모니불의 머리 좌우에 다보불과 아미타불을 그리고 불제자 아난과 가섭을 작게 그려 넣은 귀한 문화재다. 괘불은 규모가 커서 행사가 아니면 쉽게 볼 수 없어 아쉬움이 있다. 보물 제1699호 종각 2층에 있는 동종은 1580년(선조 13년)에 전라도 담양 추월산 용추사의 대종으로 제작된 것이다.

    만세루에 걸려 있는 ‘진남군벽발산안정사대종연기’ 현판에 따르면 동종은 1000여 금을 주고 1908년 용추사에서 구입해서 옮겨왔다고 기록돼 있다. 동종은 전체 높이가 115㎝, 입구 지름이 68㎝로 조선전기에 제작된 동종 가운데 큰 것에 속한다. 짙은 검은 빛이 감도는 동종은 둥글고 높게 솟은 천판 위에 단용과 음통을 갖춘 종류가 있으며, 천판 아래에는 여의두형의 입상화문대가 낮게 표현됐다. 출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스님에게 허락을 받으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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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사 동종


    안정사에는 대궐에서 하사받은 가마인 채여와 인수·궤 등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유인즉, 이 절의 송림을 둘러싸고 시비가 일어나자 왕실에서 도벌자를 절에서 벌할 수 있게 어패인 금송패를 내렸다. 채여는 사람이 타는 가마가 아니라 불사나 행사가 있을 때 불상을 운반하거나 불경 혹은 다른 귀중한 불교의 도구를 옮길 때 사용했던 것이다.

    금송패는 왕실에서 임명한 산림감시원의 신분증이다. 그러나 이 채여는 1993년 3월 13일에 후불탱화와 함께 도난당하고 없다. 문화유산을 훔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마산대학교 입학부처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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