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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본능 상실의 시대- 장효영(남해대학 관광과 교수)

  • 기사입력 : 2015-10-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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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무르익어가면서 남은 한 해의 시간도 넉넉하지 못하다. 봄에 찾아온 제비도 물러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걸 보면 또다시 차가운 계절을 맞으러 이름 모를 철새가 우리 곁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돌아올 것을 기다림은 애착보다는 반복해서 일어나는 관성적 생리현상 일지도 모른다. 마무리할 시간과 되돌아갈 시간을 알고 지키는 것은 순환하는 자연섭리이며, 자연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가치이다.

    자연의 질서가 순조롭지 못하면 항시 어려움이 뒤따르게 된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찾아듦’에 따르는 ‘되돌아감’에 대한 습성을 점차 잃어가는 것 같다. 환류 없는 일탈로 정체성이 혼미해져가면서 존재의 이유와 삶의 행복을 사유하게 된다. 얼마 전 자녀의 교육문제로 8년간 미국과 한국에 떨어져 생활하던 50대 부부의 이혼판결에 대한 뉴스는 참 서글픈 일이었다. 냉정한 법이 따뜻한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법적 판결이다. 자녀 교육을 위하여 가족이 헤어져 지내면서 돌아오지 못할 갈림길을 택한 그들에게 내려진 법적인 해석이다. 해외 유학으로 얻게 되는 외국어와 나름 우수한 환경에서 교육을 시킨다는 명분과 목적은 소중한 가정의 울타리를 깨뜨리는 우행으로 서글픈 막을 내렸다.

    남편과 아내로서 상호역할에 소홀해져서 일명 ‘정서적 유대감’이 결여되어 가족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다. 무엇을 위하여 그들은 외로운 시간에 익숙해졌으며, 무엇 때문에 세상살이에 가장 중요한 가정이라는 보금자리를 내동댕이치게 되었는가?

    이러한 사례는 단 하나의 독특한 경우는 아니다.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현상의 하나일 따름이다. 어쩌면 사회 저변에 깊이 뿌리 내린 가치관이 노골화된 것이다. 성취 욕구에 편향된 사회적 행위가 보편적 현상으로 전이될까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우리 자녀들은 초등학교로부터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어지고, 중학교 시절엔 남다른 고교입시를 위한 한 단계 심화된 프로그램에 이끌리어 점점 돌아오기 힘든 시간에 매달린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공교육에서 조차도 야간 자율학습이 밤 10시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예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늦은 심야학습까지 지속되면서, 조기 귀가는 생각조차 힘들어진다.

    제시간에 귀가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만은 물론 아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맞벌이가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40대와 50대 부부의 52%가 함께 생활전선에 매여 있으며, 일부 통계에 의하면 해외 유학에 따른 기러기 아빠의 경우도 30만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늦은 귀가와 특별한 경우 야근도 마다할 수 없기에 가정의 빈 둥지는 썰렁하기 이를 데 없는 것 같다.

    물론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회와 과학기술이 복잡해지면서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더욱 복잡한 지적 체험을 통하여 개인적 소양과 능력을 강화해 나가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탓할 수 없는,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바 이기도 하다. 문제는 삶이 희구하는 정신적 가치를 온전하게 만들어 내는 가정에로 되돌아 갈 시간이 없다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온전한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 낼 수 없게 될 것이다.

    가장 비이기적이고 온정의 집단인 가정의 화목 속에서 사랑과 행복을 느낄 시간도 없이 집 밖에서 배회한다면 내일을 위한 삶의 원동력과 진정한 휴식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가족의 사랑으로 충전되어야 사회에 대한 희생과 봉사도 진정한 것이 된다. 우리가 사회의 건전성 회복을 위해서도 이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옛말이 틀림없다. ‘눈에 보이지 않음은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다. 고 홈 어얼리!

    장효영 (남해대학 관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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