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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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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전사처럼- 정끝별

  • 기사입력 : 2015-10-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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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달리다 숨이 차면 제 목을 물어뜯어

    끓는 피들을 풀어놓는다지



    숨차게 달리는 말 잔등에 재빨리 올라

    칼날처럼 바람을 가르며

    저 거친 벌판을

    고삐도 재갈도 안장도 다 내던지고

    바람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편자도 말머리도 마침내는

    말꼬리도 없이 달려봤으면



    머리에는 새털을 꽂고

    얼굴에는 바람 자국을 새기고

    말 뱃가죽이 뚫어지도록 박차를 가해

    말발굽 구름을 내뿜으며

    달리고만 싶은데

    끼야호! 창과 활을 높이 쳐들고

    인디언 전사처럼

    달릴 줄밖에 모르는 말 위에서

    전 생을 탕진코만 싶은데



    달리면 달릴수록

    더 세게 내 허리를 붙잡는 다급한 소리

    엄마 천천히 위험해 여보!



    ☞ 생이 한 그루 나무 같을 때가 있다. 컴컴한 밤에 내린 뿌리. 갈증은 뿌리 끝 더듬이 더 깊은 밤 속으로 뻗게 하고, 때 묻은 시간은 보드라웠던 처녀의 줄기에 뻣뻣한 갑옷을 입힌다. 벌레 먹은 이파리 사이에 까치집까지 하나 들어앉으면 중년은 완성된다. 이 나무 뽑아 버리고 한 마리 말이 되고 싶다. 고삐도 재갈도 안장도 없는 알몸의 말이 되고 싶다. 정주의 시간에 묻은 때 비듬 털 듯 털어 버리고, 물관을 혈관으로 바꾸고, 고여 썩어가는 물을 흐르는 피로 바꾸고 싶다. 달리고 싶다. 끓는 피를 마구 탕진하고 싶다. 한 방울까지 탕진하고, 바람이 되고 싶다. 이중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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