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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부부 복서 배영길·유희정

세계 첫 부부 챔피언 우리 주먹에 달렸죠

  • 기사입력 : 2015-10-1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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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챔피언을 꿈꾸는 김해 부부 복서.

    남자 라이트플라이급 한국챔피언 배영길 선수와 여자 밴텀급 한국챔피언 유희정 선수.

    두 아들의 부모이자 권투선수로는 결코 적지 않은 36살 동갑내기다.

    체급별 국내 최고인 이들은 이달과 내달 각각 세계 타이틀에 도전한다.

    아내 유희정 선수는 오는 19일 일본 도쿄에서 WBO(세계복싱기구) 밴텀급(54㎏) 타이틀 매치를 치른다. 이 체급 세계 10위인 유희정의 상대는 일본의 후지오카 나오코 선수로 세계 챔피언이다. 배영길 선수는 내달 24일 태국 방콕에서 WBC(세계복싱평의회) 미니멈급(48kg) 타이틀전을 앞두고 있다. 상대인 태국의 완헹 메나요틴은 38전 전승의 챔피언이다. 배영길은 세계 12위에 랭크돼 있다.

    WBC·WBO·WBA(세계복싱협회)·IBF(국제복싱연맹) 같은 메이저 기구뿐 아니라 마이너까지 포함해도 한국인 세계챔피언은 6년 넘게 나오지 않고 있다. 이들이 도전에 성공하면 세계 최초의 부부 세계챔피언 복서 탄생이라는 신기록을 수립한다.

    ◆유희정, 29살에 취미로 권투 입문

    “계집애가 권투는 무슨···. 집에서 애나 보지.”

    유희정이 권투를 시작하자마자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은 비아냥이다. 특히 남자 선배 선수들의 수근거림이 적지 않았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이를 악물고 샌드백을 두들겼다.

    그녀는 운동선수 출신은 아니다.

    경기도 안성이 고향으로 안산의 한 대학교에서 교직원 생활을 하던 평범한 여성이었다. 10년 가까운 직장생활에 지쳐갈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집 근처 복싱도장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29살이었다. 하지만 권투 입문 1년 만인 2007년 3월 프로 데뷔전에 성공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권투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냐는 질문에 그녀는 “평소 운동을 좋아했지만 권투에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순발력은 부족한데 체력이 좋아 지구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자신 있다”고 했다.

    ◆배영길, 교도소에서 글러브를 끼다

    배영길의 링네임은 ‘유명구’다. 현재 그가 김해에서 운영 중인 권투도장도 ‘유명구 권투체육관’이다. 세계챔피언을 지낸 유제두·유명우·장정구 선수의 이름에서 각각 한 자씩을 따 유명구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본명 배영길을 쓴다. 7살과 5살 아이들이 크면서 가장으로서 본명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와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독립적으로 세계 타이틀을 움켜쥐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김해 출신인 그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술회했다.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했다. 폭력과 음주 교통사고로 구속되는 등 굴곡진 삶을 살았다. 2002년에 이어 두 번째 출전한 2004년 권투 신인왕전에서 정상에 올랐다.

    “교도소에서 권투를 배웠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한 게 학력의 전부입니다. 젊은 날 실수로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아내를 만나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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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복싱 한국챔피언 부부인 배영길(왼쪽), 유희정씨가 경기를 앞두고 훈련을 하고 있다. 유씨는 오는 19일 일본 도쿄에서 WBO 밴텀급 세계챔피언 타이틀 매치를, 배씨는 다음 달 24일 태국 방콕에서 WBC 미니멈급 세계 타이틀 매치를 앞두고 있다./김승권 기자/


    ◆권투가 맺어준 러브스토리

    경상도 총각과 경기도 처녀의 인연을 맺어준 것도 권투다. 모두 프로 데뷔 이후 경기도 안산의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했다. 처음엔 그저 지나치며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2008년 7월 7일 인천의 같은 장소에서 열릴 시합을 앞두고 준비과정에서 친분을 쌓았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둘 모두 패했다. 배영길은 PABA(범아시아복싱협회) 플라이급 잠정 챔피언 결정전에서, 유희정은 한국 여자 슈퍼밴텀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각각 무릎을 끓었다. 낙담한 배영길은 안산을 떠났다. 글러브를 벗어던지고 충남 천안의 중국 음식점에서 요리를 배웠다. 장사가 잘돼 제법 돈도 모았다.

    연인은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인터넷 SNS 서비스 ‘싸이월드’ 등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고 사랑을 키웠다.

    어느 날 둘은 전화로 인생의 새출발을 의논했고, 유희정은 사랑을 따라 천안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권투와 인연은 쉽게 끊지 못했다.

    배영길은 아내에게 권투를 다시 시작하자는 제의를 했고 흔쾌히 답을 받았다. 결국 2009년 김해 장유에서 체육관을 열었다. 현재 운영 중인 체육관이다.

    체육관 한쪽 단칸방 생활이 시작됐다. 방문을 열면 곧바로 체육관이다. 언제든 링으로 오를 수 있다. 가족만큼이나 권투는 이들 부부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영길은 아내에 비해 다소 왜소해 보인다. 키 165㎝, 몸무게 47㎏인데 아내는 키 162㎝에 몸무게 53㎏이다.

    ‘주변에서 부부싸움 때도 치고받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냐’고 묻자 부인은 “많은 이들이 짓궂게 물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나”며 웃었다.

    ◆상대는 각 체급 세계 챔피언

    배영길이 11월 맞붙을 상대인 태국 완헹 메나요틴은 프로복싱 38전 전승의 미니멈급 세계 최강자로 불린다.

    배영길은 현재 프로통산 31전 26승(21KO) 1무 4패를 기록 중이다. PABA 플라이급(51㎏) 및 ABC(WBC 아시아복싱평의회) 슈퍼플라이급(52㎏) 챔피언도 지냈다.

    한국인으로서는 10번째 미니멈급 세계챔피언 도전이다. 특히 그의 세계챔피언 도전은 2009년 9월 12일 IBO(국제복싱기구) 슈퍼페더급 김지훈 선수 이후 6년 만이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유희정은 프로통산 17전 15승(6KO) 2패로 WBC 8위, WBA 6위에 랭크돼 있다. ABC 여자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이자 WIBF 밴텀급 세계챔피언이다. 14연승 중 6라운드 이후 12승을 거둘 정도로 체력을 바탕으로 후반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오는 19일 일본에서 맞붙을 WBO 밴텀급 타이틀 매치 상대인 일본의 후지오카 나오코는 세계챔피언이다.

    유희정은 “열심히 준비했고 체력에서 앞서기 때문에 자신 있다. 반드시 승리해 한국 복싱의 자존심과 위상을 드높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녀는 16일 오전 일본으로 출국한다. 19일 오후 8시 30분 도쿄 고라쿠엔홀에서 새로운 복싱 역사가 시작된다.

    이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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