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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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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궁극의 삽질- 김재수(영화감독)

  • 기사입력 : 2015-10-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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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턴테이블의 먼지를 털어내고 LP로 음악을 들었다. 처음엔 바흐를 듣다가 정태춘 박은옥 노래를 들었다. 지구레코드 제작 1985년 10월 15일. ‘북한강에서’ ‘봉숭아’ ‘서울의 달’ 등이 수록된 LP다. 객쩍은 소회랄까. 두 사람이 들려주는 노래는 나를 청년의 시대로 안내했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의 노래 속에도 내 감정의 흐름이 충분히 이입되었지만 그것보다는 이 레코드 맨 마지막에 수록된 노래 때문이기도 했다. ‘정화의 노래’/정태춘 2:45 건전가요. 1기 박정희 쿠데타정권과 2기 전두환 쿠데타정권은 ‘정화(淨化)’의 깃발 아래 자신들의 더럽고 추잡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민들의 의식의 흐름을 지배하기 위해 영화, 연극, 문학, 노래 등 모든 예술행위에 엄격한 검열의 잣대를 들이대고, 듣지 않으면 회유와 공갈 협박으로 압박했다. 정태춘의 건전가요 ‘정화의 노래’는 힘찬 행진곡 멜로디와 함께 “밝아오는 새아침에 힘찬 발걸음 거리마다…”로 시작된다. 그 시절 정태춘이 이 노래를 부르며 느꼈을 상실의 자괴감을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작금의 문화예술정책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행태를 보면 뭔가 우려스러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화예술위원회가 각종 지원기금 수혜자 선정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했거나 세월호를 다룬 작가들의 작품이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도 탈락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정부 비판적 예술가들에 대한 정치적 압박과 지원 제한은 국회 교문위 국감에서 도종환 의원에 의해 밝혀졌듯이, 박근형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가 소속된 극단 ‘골목길’에서 예술위에 지원 신청한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 대해 지원포기 의사를 강요했고 급기야는 포기각서까지 받아내는 야만을 드러냈다.

    정부의 문화 예술창작에 대한 검열이 도를 넘고 있다. 이에 각계각층의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과 위원들의 사퇴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서명과 성명으로 정부의 압박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기에 이르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부산국제영화제 지원액 삭감과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사전 심의 등도 세월호 관련 영화 ‘다이빙벨’과 연결되어 그 저의를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문화예술 정책을 정권이나 권력자의 구미에 맞추는 것은 지극히 옳지 않다. 나는 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심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한쪽에서는 문화예술 융성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을 길들이기 위한 온갖 술수를 꾀하는 것이다. 정부의 창작 검열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며 중대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는 헌법적 가치 이전에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정책은 이즘 대중음악계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음원 사재기와 지금은 조금 뜸해지긴 했지만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몇몇 출판사의 고질적인 책 사재기와 해외 판권 해적 출판, 저작권 침해, 표절 시비 같은 비열한 범죄행위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몰두하는 것이 문화예술인들을 위하는 정책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친일의 주구들과 유신의 향수를 뿌린 세력들이 새벽 안개를 헤치며 힘찬 구둣발로 행진해 오는 음습함에 나는 오싹한다. 나는 이런 모든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압박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과도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친일과 쿠데타로 상징되는 박정희 폭압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일련의 음모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뜻 모를 창조경제를 외칠 때가 아니라, 창조예술을 억압하고 회유하는 궁극의 삽질에 대해 분노해야 할 때이다.

    김재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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