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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기자] 김유경기자의 스페인·포르투갈 편 (3)

바보야. 네가 그림을 보는 게 아니야, 그림이 너를 보는 거지

  • 기사입력 : 2015-10-22 13: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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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편_방송인터넷부 김유경 기자/스페인·포르투갈 편

    (3)바보야. 네가 그림을 보는 게 아니야, 그림이 너를 보는 거지


     
    별다른 이의가 없다면, 이번 편의 시작은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우리집 가족사로 꾸며보고자 한다.
     
    살다보면 부모님에 관한 질문, 즉 일종의 호구조사를 받아야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가 종종 있다. '유경아. 너네 부모님은 뭐하시니?'(새 학년에 올라가면 짝이 된 동급생이 묻는다.) '김 기자. 부친이 공직에 계신가?'(나이 지긋한 취재원들이 곧잘 물어오는 방식이다.) '부모님께선 어떤 일을 하시나요?'(선보러 나가면 건너편에 앉은 남자가 하는 질문. 딱히 할말이 없다보니 다 알고 나와놓고도 묻는다.)

    내가 그에 걸맞은 대답을 내놓으면, 십중팔구 이런 반응이 되돌아 온다. '넌(김 기자는, 유경씨는)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네(요).' 순간 나의 고개는 갸우뚱, 약 45도 각도로 기운다. 그런가? 우리집이 예술하는 집안인가? 그렇게 방심하고 있는 사이, 어떤 이들은 스스럼없이 내 면상에 대고 이런 노골적 공격을 가한다. '부모님 보아하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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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 경상도 액션 느와르 '친구'의 명장면. 김광규가 유오성을 상대로 호구조사를 하고 있다. 김광규:'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유오성:'건달입니더.'
    나는 미술하는 아버지와 음악하는 어머니 슬하에 자랐다.(단언컨데 지금 자소서 쓰는 거 아니다.) 아버지는 서예를, 어머니는 첼로를 업(業)으로 삼았다. 그래서 뭐 먹고 살았냐고? 흙 파먹고 이슬 털어 먹고 살았냐고? 아니. 그렇지 않았다.

    예술혼 충만한 서예가이고 음악가이긴 했지만, 생애 전반을 두고 따지자면 부모님은 생떼 같은 자식들을 책임져야하는 '엄마' '아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엄마. 아빠. 지못미.ㅜ_ㅜ) 아버지는 작품활동을 병행하면서 마산의 한 고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어머니는 시립교향악단 단원으로 일하면서 음대 입시생 레슨을 했다.

    그러니까 반짝반짝 빛나는 금수저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쇠숟가락으로나마 쌀밥 먹고 자랐다는 말이다. 금수저 대신 그림이나 음악을 감상하는데 조금 더 수월한 눈과 귀를 가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사람들은 내가 붓글씨도 곧잘 쓰고 첼로도 다룰 줄 안다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수차례 트레이닝을 받았으나 부모님으로 하여금 하나뿐인 딸에게 예술적 자질이 별로 없다는 충격적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붓도 활도 제대로 잡을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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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모친은 내게서 첼리스트 장한나의 모습을 찾으려 했을까? 엄마, 미안요. /연합뉴스/
    이쯤에서 한 가지 묻고 싶다. 흔히 생각하듯 예술하는 이들은 늘 배가 고프고 어딘가 조금 불행한가? 고흐처럼 가난과 고독 속에서 미쳐가거나 베토벤처럼 귀가 멀어 울부짖어야 하나? 정말 아픈만큼 성숙하고 흔들려야 청춘, 아니 예술인가?(어딘가 좀 핀트가 안 맞는 문구 같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그러니까 좀더 직접적으로 말해 자본이나 권력, 명예 같은 세속적 성공은 예술의 대척점에 놓일수 밖에 없는가? 여기에 '아니오!'라고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예술가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떵떵거리며 누릴 거 다 누리며 살았고, 권력과 명예가 주는 달디단 열매도 맛보았으며, 예술적으로도 대단한 경지에 올랐던 남자. 그의 이름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a Velazquez·1599~1660)', 스페인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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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고흐는 얼굴만 봐도 슬프고 애처롭고 서럽고 뼈가 시리다./미술대사전(인명편)/
    먼저 벨라스케스의 생애를 따라가보자. 그는 젊은시절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도화서(圖畵署)가 있었던 것처럼 스페인에도 '궁정화가'라는 직책이 있었다.

    그는 평생 마드리드의 알카사르 궁에 살면서 궁정화가로서 펠리페 4세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심지어 펠리페 4세는 벨라스케스 외에는 아무도 자신의 얼굴을 그리지 못하게 했다. 대체 얼마나 잘 그렸길래?!) 이후에는 의전관으로 임명되어 국내외로 왕을 따라다니며 의전을 담당했다.

    특히 그는 신분상승 욕구가 강했는데, '귀족'이 되고 싶어 안달이었다고 한다.(벨라스케스의 부친은 포르투갈계 귀족이었으나 별 볼일이 없었던 모양인지 그는 모친의 성(姓)인 '벨라스케스'를 따랐다.) 젊은시절 출신 탓에 몇번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었던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를 조르기 시작했다.

    '형님. 아니, 왕님. 저 귀족 되고 싶어요.' 그렇게 그는 왕과 교황의 특별허가를 받아 '진짜 귀족'이 됐다. 1659년 귀족 칭호를 받고 '산티아고 기사단'에 입단한 것. 당시 '산티아고 기사단'은 소수의 순수 혈통 귀족만이 가입할 수 있는 카톨릭 기사 모임이었다.(헐. 어짜노. 물 흐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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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라스케스가 그린 펠리페 4세의 초상화. 펠리페 4세는 왕의 위엄이 잘 느껴지지 않은 이 사실적인 그림을 매우 좋아했다.(그는 예술적 심미안을 가진 왕이었다.) 똑같은 그림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도 있어 진품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명예와 권력을 쫓느라 분주했지만 벨라스케스는 자신의 본분도 잊지 않았던 영민한 사람이었다. 그는 열심히, 꾸준히, 그것도 매우 잘 그렸다. 두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를 방문해 르네상스 미술을 심도있게 공부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역작을 여럿 그리기도 했다.(두 마리 토끼를 쫓다보면 두 마리 다 잡는 수도 있나보다.)

    자! 드디어 '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가 온 것 같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최고의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이 그림'. 고야, 마네, 휘슬러 등 수많은 화가들에 영감을 주었고 피카소가 수도 없이 리메이크 했다는 '이 그림'. 나는 그것을 스페인 취재 둘쨋날,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 1층에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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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자화상. 콧수염 때문에 그런지 좀 뺀질뺀질하게 생겼다는 느낌이다. 손재주 좋은 것도 출세한 것도 전부 다 부럽다.
    미술관 방문은 '일 때문에 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진짜 일만 할 수는 없다'는, 기자들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일정이었다.(정치인들 해외연수 가서 하루종일 골프치고 노는 것에 비하면 참으로 양반 아닌가? 구차하게 이런 변명을 해본다.) 물론 그림 한 점 한 점에 정성스레 눈을 맞추며 노닐 여유는 없었다.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프라도 미술관이 자랑하는 몇몇 대작들만, 그것도 거의 훑는 수준으로 빠르게 돌았다.(프라도 미술관은 회화만 해도 8000점 가까이 소장하고 있지만, 아무리 건물을 확장해도 공간이 모자라 이중 1300점만 겨우(?) 공개하고 있다. 공간이 너무 방대해 미술관 내부에서 길을 잃고 두리번대는 관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 그림은 1층 중앙의 천장이 아주 높은 방 가운데 우뚝 걸려 있었다. 솔직히 말해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좋다' 혹은 '잘 그렸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대신 한동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던 기억 뿐. 왜 그랬던걸까? 색감이 화려하지 않아서? 등장인물들이 아름답지 않아서? 붓터치가 섬세하지 못해서? 모두 틀렸다. 도대체 그림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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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 그림이다. 매우 잘 그렸다는, 명작이라는 느낌이 팍팍 오는가?(절대 안 온다에 한 표.)
    그림은 캔버스에 그린 유화로, 1656년에 제작됐다. 크기는 316 x 276cm. 그림 안에는 모두 11명의 남녀와 개 한마리가 등장한다. 먼저 그림에서 가장 밝게 처리된 부분을 살펴보자. 볼이 볼록하고 피부가 새하얀, 새침해 보이는 꼬마 여자아이가 그림 중앙에 서 있다.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여왕의 딸 '마르가리타 공주'다. 공주의 양편으로 시녀가 있다. 구체적인 정황은 잘 모르겠지만, 공주의 심기가 불편한지 시녀 하나가 무릎을 꿇고 공주에게 무언가를 건네며 달래고 있다.

    시녀가 건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한데, 몇년 전에 그것이 '태운 납'이라는 주장이 나와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7세기에는 얼굴이 창백할수록 미인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공주를 비롯한 왕실 여인들은 최대한 창백하게 보이기 위해 납을 태워 그 연기를 들이마셨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일종의 화학적 요법에 의한 파운데이션이나 콤팩트랄까? 공주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가무잡잡한 유경 공주, 미인되려다 아마 일찌감치 납 중독으로 저세상 가셨을 듯하다.)

    공주의 오른편으로는 공주의 친구들로 추정되는 두 난쟁이와 엎드린 개가 있다.(스페인 왕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난쟁이를 고용했다고 한다. 그들은 광대 역할 뿐 아니라 왕자나 공주의 시종 노릇도 겸했다.) 그들 뒷편으로 수행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있고 저 멀리 열린 문을 통해 계단에 서 있는 또다른 수행원이 보인다.(이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스페인 화가 안토니오 팔로미노(Antonio Palomino)가 1724년 출간한 '스페인화가들의 연대기'에 그림 속 등장인물의 직책과 이름이 모두 기록돼 있다.)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 하나. 공주의 바로 뒤편, 거울처럼 보이는 희부연 네모 안에 두 남녀가 보일 거다. 그리고 그들 왼편으로 화가 한 사람이 붓과 팔렛트를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누구일까? 거울 속에 두 남녀, 그리고 콧수염을 기른 화가. 이들이 바로 이 그림 전체를 미궁 속에 빠뜨리는 장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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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 셋의 존재가 늘 의문스럽다. 특히 거울에 비친 남녀가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을 분분하게 하는 핵심 키워드다. /최경화 저 '스페인 미술관 산책'에서 스캔/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거울 속에 비친 두 사람은 바로 마르가리타 공주의 부모인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여왕이다. 화가는 바로 그림을 그린 벨라스케스. 벨라스케스는 이 미스테리한 군상(群像) 속에 자신의 자화상을 슬쩍 끼워넣었다. 일단 여기까지. 등장인물의 면면을 살펴보았으니 이쯤에는 이 그림이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려진 것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이 잡혀야 정상일 거다. 감이 잡히는가?(뭘 좀 아는 척 열심히 써내려가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림의 제목은 '라스 메나니스(Las Meninas)'. 우리말로 번역하면 '시녀들'이다.

    재미있는 건 이 그림의 정확한 제목을 여태 아무도 모른다는 것. 이 그림의 제목은 1666년 왕실 소장 미술품 목록에는 '시녀들 및 여자 난쟁이와 함께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로, 17세기 말 몇몇 궁정 문서에는 '벨라스케스의 초상화'로, 이후에 발견된 문서에는 '펠리페 4세의 가족'으로 기재돼있다. '시녀들'이라는 제목은 1843년 이후에 등장한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도, 아무리 저명한 미술사학자라도, 이 그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말이다.(이 때문에 이 작품은 위대해졌다. 특히 내가 경악했던 건 이 그림이 관객을 어떻게 그림 내부로 끌어들이는가를 깨달았을 때.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음 4가지 상황을 통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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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해를 돕기 위해 문제의 그림을 다시 한번 삽입해 드립니다.(#친절한 #유경씨라 #불러줘)
    #상황 1. 공주의 초상화를 그리는 경우
    궁전 안에 마련된 벨라스케스의 작업실. 벨라스케스는 지금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계속되는 스케치가 답답하고 지루해 폭발 직전인 공주 주위로 시종들이 급하게 몰려든다. 한 시녀는 꿇어앉아 공주에게 뭔가를 들이밀며 공주를 달랜다. 때마침 국왕 부부가 작업실을 방문했다. 어린 딸이 모델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그들의 등장은 그림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반대편 거울에 비친다. 즉, 국왕 부부는 공주를 보고 서있는 우리(관객)의 등 뒤에 와 있다.(그러니까 우리 앞쪽에 벨라스케스와 공주 등 9명의 사람들이 있고, 가운데 우리가 서서 그들을 보고 있다. 우리 등 뒤에 국왕 부부가 와 있다. 즉, 우리는 그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여 그림의 일부가 된다.)
     
    #상황 2. 국왕 부부의 초상화를 그리는 경우
    역시나 벨라스케스의 작업실. 벨라스케스는 지금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여왕을 그리고 있다. 때마침 마르가리타 공주가 국왕 부부를 만나기 위해 작업실을 방문했다. 난쟁이, 멍멍이 등 여러 시종들을 거느리고서.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여왕은 어디 있냐고? 역시나 그들은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관객) 등 뒤에서 모델 노릇을 하고 있다.(우리 앞에 벨라스케스와 공주 등 9명의 사람들이 있고, 이들은 우리 등 뒤에서 모델이 되고 있는 국왕 부부를 쳐다보고 있다. 역시나 우리는 샌드위치처럼 그림 속에 끼여있다.)
     
    #상황 3. 벨라스케스의 자화상을 그리는 경우
    벨라스케스는 지금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그는 때마침 작업실에 놀러온 공주와 국왕 부부도 곁다리로 그리고 있다. 이 경우, 벨라스케스는 왕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고결한 신분을 획득하고자 하는 자신의 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상황 4. 관객이 그림을 그리는 경우
    상상의 나래를 더 크게 펼쳐보자. 이번 상황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우리(관객)이다. 우리는 국왕 부부를 그리고 있는 벨라스케스의 모습을 그리는 화가다. 국왕 부부는 역시나 우리 뒤편에서 벨라스케스의 모델이 되고 있다. 때마침 공주와 멍멍이, 시종들이 작업실에 놀러왔다. 공주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벨라스케스를 그리고 있는 우리를 구경하고 있다. 즉, 우리가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우리를 보고 있다.(그림이 나를 보고 있다니! 저 새초롬하고 오만해보이는 공주의 눈초리가 무섭다. 좀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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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는 이 그림을 대학시절 읽었던 박민규의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커버로 처음 접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여자의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다. 박민규는 이 그림에 등장하는 못생긴 난쟁이를 보고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뉴시스/
    이 작품은 애초에 왕의 개인 집무실에 소장돼 왕족과 고위 성직자 등 소수만이 볼 수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초 프라도 미술관으로 옮겨져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이 그림이 가진 의문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특히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로 등장하는 국왕 부부가 실제로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견은 매우 분분하다.(두 사람이 화면 내부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보거나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 거울에 반사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여튼 이 그림은 분명 미스테리하다.

    벨라스케스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썩 사고 싶은 그림은 아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모호한 시각적 장치는 관람자의 시선, 현실과 현실의 재현, 실제와 환영의 관계를 교묘하게 얽히게 만든다.(이 그림이 가진 미술사적 의미 대해 진중권과 미셸 푸코도 각자의 책에서 매우 중요하게 언급했다. 솔직히 미학이나 철학은 내가 뭐라 말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분야이니 여하튼 심오한 뜻인줄 알고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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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도 미술관에 비치돼 있던 한국어 안내서. 각 층에 걸린 그림을 연도별로 정리한 대략적 미술관 지도다.
    얼마 전 한 지인이 내게 물었다. '너 프라도 미술관은 다 둘러봤냐?' 그때 솔직히 속이 좀 아팠다. 지인은 지난해 여름 한달을 스페인에 머물렀고, 일주일 동안 매일 오후 프라도 미술관에 가서 되도록이면 많은 그림을 보려고 노력했단다.(지인에 의하면 오후 6시 이후 입장은 무료라고 한다. 스페인 여행계획이 있는 분들 참고 하시길.) 내가 프라도 미술관에 방문했던 지난달 중순에는 '피카소 특집전'이 열리고 있었다.(무려 피카소! 게다가 모두 진품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거기엔 너무 많은, 너무 위대한 화가의 작품 수백 점이 발에 채이듯 즐비했으므로 피카소 따위는 볼 시간도, 볼 여력도 없었다.(아놔.) 언젠가, 그리 넉넉하지 않은 우리집도 형편이 활짝 피는 날이 온다면(울 아부지 작품 대박이 나서 피카소 정도 된다고 보고. 꿈만 같네.) 가족 모두 함께 프라도 미술관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 나는 금수저 구경도 못해봤지만, 훗날 태어날 내 새끼 입엔 금수저 꼭 물려서.(사실 밥이나 안 굶기면 다행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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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전경. 작품 수가 어마무시하다보니 미술관은 1년 내내 확장공사 중이다. 꼭 다시 가보고 싶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꽃보다 기자 스페인·포르투갈' 다음편에서는 '(4)포르투갈 바다에 파도가 치면 파두(Fado)를 불러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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