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8일 (목)
전체메뉴

[길.예.담] (16) 가요 ‘밤배’의 상주은모래비치~남해 보리암 가는 길

밤하늘 잔별들이 노니는 그 바다

  • 기사입력 : 2015-11-05 22:00:00
  •   
  • <밤배> - 둘다섯

    검은 빛 바다 위를 밤배 저 밤배♪

    무섭지도 않은가봐 한 없이 흘러가네♬

    밤하늘 잔별들이 아롱져 비칠 때면♪

    작은 노를 저어저어 은하수 건너가네♬

    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면♬

    어디서 어디서 잠들텐가 음♪

    볼 사람 찾는 이 없는 조그만 밤배야♬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노랗게 익은 들판,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짙푸른 바다. 가을의 색깔은 참으로 오묘하다.

    오색단풍이 자신의 몸매를 자랑하듯 자태를 뽐내면 떨어진 낙엽은 시샘이라도 하듯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가을을 노래한다. 가을은 보는 것만이 아니라 소리로 듣고 음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메인이미지
    남해 금산 쌍홍문에서 바라본 보리암(왼쪽)과 상주은모래비치 전경.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바닷가에도 가을은 조용히 찾아 오나 보다. 제철을 맞은 ‘낙지’ 등 해산물을 잡기 위해 바다로 나서는 어부들은 손놀림을 바쁘게 움직이고,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낚시꾼들은 가을 감성돔의 대물을 꿈꾸며 바다로 향한다.

    전국의 산들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려는 단풍객들로 붐비는 반면 바닷가는 늦가을의 호젓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매력이 있다.

    ‘이런 맛에 바다에 가는 건 아닐까?’ 스스로 위안으로 삼으며 꼬불꼬불 이어진 해안선을 따라 가을 바다의 낭만 속으로 빠져든다.

    1970년대 아름다운 가사와 감미로운 음색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포크듀엣 둘다섯이 부른 ‘밤배’의 배경지 남해 상주은모래비치로 향하는 길은 가을 낭만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해안선을 따라 가다 보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창선·삼천포대교를 만나기도 하고 원시어업인 죽방렴에서 멸치 등 온갖 종류의 고기를 잡아올리는 어부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메인이미지
    남해 상주은모래비치 전경.


    피서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 나간 남해 상주은모래비치 가을 바닷가는 쓸쓸함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다.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파도소리, 바람소리, 낙엽 구르는 소리 등 가을을 노래하는 바다를 만나기도 한다.

    하얀 모래는 발을 내려놓기가 아까울 정도로 곱다. ‘푹신푹신’ 마치 하얀 구름을 깔아놓은 듯 감촉이 부드럽다. 한발한발 내디딜 때마다 발이 푹푹 모래 사이로 빠져드는 느낌이 오묘하다.

    반면 바닷물을 머금은 모래는 차지다 못해 단단하다. ‘물을 머금은 모래와 그렇지 않은 모래의 차이가 이렇게 날까?’ 혼자 중얼거리며 거닐다 보니 정감이 가는 글귀가 눈에 뛴다. ‘명호네 가족 여행 왔다…!’ 일가족이 남해로 여행을 왔나 보다. 기념으로 모래사장에 글을 남겼는데 그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아름답다.

    손을 잡은 연인들, 아이들과 함께 모래사장을 뛰놀며 즐거워하는 가족들…, 늦가을의 바다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삶의 여유를 허락한다.

    울창한 송림 숲과 햇살에 반사된 잔잔한 파도, 하얀 모래톱,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배. 늦가을의 남해 상주은모래비치는 한 폭의 가을 수채화 같다.

    40여년 만에 친구와 함께 남해 상주은모래비치를 다시 찾은 중년의 여인은 자연이 준 아름다움에 반해 ‘자신이 시인이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상주은모래비치의 아름다움을 글로 남기고 싶단다. “글을 잘 쓸 줄 모르지만 시인이라면 이 아름다운 백사장을 글로 남길 거 같아요.”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이날의 기억을 추억으로 꼭 남기고 싶단다.

    메인이미지
    남해 상주은모래비치 입구에 세워진 둘다섯의 ‘밤배’ 노래비.


    가수 둘다섯도 상주은모래비치만의 아름다움에 반해 국민애창곡 ‘밤배’를 짓지 않았을까? 상주은모래비치 입구에 세워진 노래비 ‘밤배’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2007년 둘다섯의 멤버 이두진씨는 ‘둘다섯과 다정한 사람들’이란 사이버 카페에 ‘밤배 이렇게 만들었다’는 글을 올렸었다. 요지는 1973년 남해안을 여행하게 되었고 남해 상주해수욕장(상주은모래비치)에 간 후 금산 보리암에서 하루 묵게 되었는데 발 아래 남해상주해수욕장과 함께 캄캄한 바다 위에 작은 불빛이 외롭게 떠가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그 느낌을 메모해 즉석에서 곡을 흥얼거렸고 다음 날 서울로 돌아와 곡을 다듬어 노래를 완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창작 소회에서 “금산 보리암에서 바라본 밤바다의 작은 불빛, 그 밤배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가야 하는 밤배는 거친 바다와 싸우며 삶을 영위해 가는 어민들의 운명처럼 느껴져 ‘밤배’ 노래는 그들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다.

    노래비에는 밤배를 비롯해 둘다섯이 불러 유명해진 긴 머리 소녀, 얼룩 고무신, 일기, 바다, 서울여행, 먼 훗날, 눈이 큰 아이 등 10곡을 원하는 대로 선택해 들을 수 있는 음향시설도 갖춰져 있다.

    메인이미지
    남해 상주은모래비치 입구에 세워진 둘다섯의 ‘밤배’ 노래비.


    상주은모래비치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해의 명산 금산(705m)과 해수관음 성지인 보리암으로 향한다. 가수 둘다섯이 간 길을 다시 한 번 느껴 보고 싶은 마음에 길을 따라 나선 것이다.

    상주은모래비치에서 금산 보리암까지는 대략 18㎞가량 30여 분이 소요된다. 금산을 돌아 보리암으로 가는 길에 만난 가을녘의 풍경은 풍요로움과 정겨움이 넘친다.

    금산 보리암으로 가는 첫 관문은 복곡 제1주차장에서 다시 제2주차장까지 가는 3.1㎞ 구간. 둘레길 같으면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경사가 심해 승용차로 8~10분, 걸어서는 2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제2주차장은 주차공간이 협소해 50대밖에 주차를 할 수 없단다. 따라서 내려오는 차량만큼 올라 갈 수 있어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평일엔 평균 20~30분, 주말엔 예상하기조차 힘들다고 국립공원 관계자는 귀띔한다. 복곡 제2주차장에 이르면 보리암까지는 걸어서 대략 15분. 언덕을 오르면 이내 남해 푸른 바다의 장쾌함이 눈앞에 펼쳐진다.

    넓고 푸른 바다와 점점이 박힌 섬들과 배, 그리고 반짝이는 상주은모래비치와 어우러진 마을풍경. 섬을 감싸 안은 듯한 푸른 바다는 엄마의 품속같이 아늑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쉽게도 둘다섯이 보고 느낀 밤 풍경은 볼 수 없었지만 보리암에서 바라본 상주은모래비치와 마을, 남해안의 섬들과 바다는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메인이미지


    해수관음 성지인 보리암으로 접어들면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접할 수 있다. 양양의 낙산사,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알려진 보리암은 관음보살에게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성지로 마음속 근심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해가 뉘엿뉘엿 바닷속으로 향해 갈 때쯤이면 돌아갈 곳을 찾아 날갯짓하는 갈매기처럼 오늘도 하루를 돌아보며 새로운 삶의 행복을 느껴본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준희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