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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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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찻사발 수집가 서창수 씨

축구감독의 30여년 끈질긴 찻사발 사랑

  • 기사입력 : 2015-11-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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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창수씨가 찻사발을 살펴보고 있다. 서씨는 “김해 찻사발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김승권 기자/


    “그냥 보고만 있어도 2시간은 훌쩍 지나갑니다.”

    생산 연대를 파악하기 힘든 찻사발을 양손에 받쳐 들고 마치 온 세상을 뒤져도 구할 수 없을 보물처럼 바라보고 있는 서창수(55)씨에게 처음 건넨 질문은 “그게 그렇게 좋으세요?”였다.

    지난달 29일 김해외동초등학교 한쪽에 마련된 사택에는 서씨 집에서 직접 가져온 150여 점의 찻사발이 곳곳에 진열돼 있었다. 그 수가 너무 많아 바닥에도 찻사발을 뒀는데 움직일 때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짧게 깎은 머리에 붉은 피부, 탄탄한 체구를 가진 서씨는 현재 김해 외동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찻사발 수집과 같은 고상한 취미와 거리가 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자가 찻사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사발은..?”이라는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서씨의 입에서는 속사포 같은 설명이 쏟아져 나왔다.


    조선 철종 때부터 수집한 그릇을 물려받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따라다니며 그릇 파편 쪼가리를 주워 왔던 것이 어느덧 200여 점이나 되는 찻사발을 모으게 된 것입니다.”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가 20살 무렵 부친으로부터 조상 대대로 내려온 귀하디 귀한 그릇 46점을 물려받은 이유는 서씨 말고는 가족 중 그릇에 관심이 있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릇을 물려받게 되는 순간 뭔지 모를 책임감 같은 것을 느꼈어요. 물려받은 그릇 대부분이 김해 찻사발이었는데 이왕에 물려받은 것이라면 김해 찻사발들을 모두 모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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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창수씨가 찻사발을 닦고 있다.
    찻사발 수집에만 집 수채값 들어

    현재 그가 보유하고 있는 찻사발은 200여 점. 부친께 물려받은 찻사발을 제외한 150여 점은 그가 직접 수집한 것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김해 찻사발. 그는 지난 30여년 동안 남해부터 함안, 산청, 밀양, 사천 등 도내뿐만 아니라 전남지역까지 누군가 김해 찻사발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만 들어도 찾아갔다.

    “한 번은 밀양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김해 찻사발을 소장한 사람을 만났는데 팔지 않으려 했어요. 15번이나 찾아가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내가 김해 찻사발을 모아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도 설명하고 수십 차례 설득한 끝에 겨우 사발을 샀습니다.”

    서씨가 김해 찻사발을 모으기 위해 쓴 돈은 집 몇 채를 사고도 남을 돈이라고 한다.

    “아내 몰래 돈을 빌려다 사기도 하고, 친척들에게 부탁해 돈을 얻어다가 구입하기도 했어요. 아직도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습니다.”

    서씨는 생활이 궁핍할 때는 찻사발을 팔아야겠다는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에게 수십억을 줄테니 그가 가지고 있는 찻사발을 모두 팔라는 제의도 있었다. 그럴 때면 서씨는 조상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조상 때부터 수집한 찻사발을 팔면 지금 내 삶은 조금 편해지겠지만, 저승에 가서 어떻게 조상을 뵙겠느냐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찻사발 훔치러 집에 도둑이 찾아오기도

    “수년 전 새벽에 잠이 안 와 아파트 베란다에 서 있었는데 공중에서 밧줄이 내려왔어요. 우리 집이 꼭대기층이었는데 옥상에서 줄이 내려온 겁니다. 밧줄을 타고 누군가 내려오더니 우리 집 앞에 멈췄는데 내가 버럭 소리 지르니까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어요. 그때 잠들었다면 집 안에 있는 찻사발이 모두 도난당했을 것이란 생각이 드니 섬짓했어요.”

    이후 그는 딸이 사는 아파트로 찻사발을 모두 옮겼다. 딸의 집은 아파트 중간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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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창수씨가 찻사발을 살펴보고 있다. 서씨는 "김해 찻사발 박물관을 만들어 가문 대대로 수집한 찻사발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김승권 기자/

    ‘장군사발’과 ‘회황색 인화문 국화무늬 3귀 항아리’

    많은 사발 가운데 서씨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장군사발’과 ‘회황색 인화문 국화무늬 3귀 항아리’다.

    “장군사발은 생산 연도가 400~450여년 전 임진왜란 전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이야말로 김해 찻사발을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고 말했다. 그는 “회황색 인화문 국화무늬 3귀 항아리 역시 15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박물관장 등 외부 인사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가장 가치가 높은 그릇으로 평가해준 것이기도 합니다”고 덧붙였다.



    김해 찻사발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

    서씨에게 왜 시간과 돈을 투자해 가면서까지 김해 찻사발을 모으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웃 일본의 경우 찻사발의 가치를 잘 알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 전용 박물관을 만들어 널리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천년 전부터 찻사발이 있었고 그 유물들이 많이 있지만, 옛날 찻사발 박물관 하나 없는 실정입니다. 찻사발, 특히 분청사기의 고향인 우리 김해의 찻사발을 모두 모아 박물관을 만들어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 외국 사람들을 김해로 방문하게 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찻사발이 위대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싶습니다”고 전했다. 그는 김해 찻사발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수십년 동안 수집한 찻사발을 모두 기증할 수도 있다는 의향도 밝혔다.

    “아깝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에 그는 “귀중한 물건을 나만 볼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고 말했다.

    고휘훈 기자 24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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