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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110) 고성 (20) 거류면 안정사 가섭암 ~ 의상암

가을내음 머금은 안정사엔 소나무향 그윽

  • 기사입력 : 2015-11-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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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대사 제자 봉진스님이 처음 건립한 안정사 가섭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때 이르러 벽봉 화상이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가을바람이 풀리고 지나간 이른 아침에 창원시 진전면과 고성군 동해면을 이어주는 동진교를 건넜다.

    고성 동해면으로 들어서니 잔잔한 바다는 그지없이 평화로웠다. 학꽁치 낚시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손길이 아침부터 분주했다. 방파제 주변에는 낚시꾼들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각종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런 것을 문화적 가치 척도의 빈곤으로 해석을 해야 할까. 아니면 교육적 방법에 대한 부재로 이해를 해야 할지 잠시 혼란이 일었다.

    아무리 좋은 교육적 이론이라고 해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헛것이다. 교육에서 말하는 참 교육은 부모의 밥상머리 교육이고 올바른 가정교육이다.

    바다는 우리들의 삶이 공존하는 자연이지 쓰레기장은 아니다. 자연은 우리가 버리고 상처를 주면 그만큼 반드시 돌려준다는 교훈을 알게 될 때야 값진 문화적 가치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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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섭암 법당

    ▲안정사 한산무송·가섭암

    가을바람이 풀린 논에는 추수가 한창이다. 어릴 적만 해도 논에서 나락을 낫으로 베어 말린 다음 지게에 짊어져 집으로 가져와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전 가족이 동원돼 홀태로 탈곡을 했다. 농번기 방학을 한 아이들까지 함께 볏단을 뒤집어 말리고 새참도 함께 먹으며 자연과 공존하는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지금이야 농기계가 일을 대신하는 시대로 접어들어 소 울음과 워낭소리가 사라져 황량함이 가득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고 가듯 벼도 나락은 식량으로 주고 짚단은 땅을 갈아 줬던 소의 사료로 주고 간다. 조금만 낮추고 살면 세상에 고맙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 것이 행복의 가치이다.

    차창으로 스쳐 가는 가을 정취에 젖다 보니 벽방산 안정사 주차장이다. 안정사 산내 암자를 찾아가는 길이다. 안정사로 들어가 대웅전에서 돌담 요사채를 거치면 산내 암자로 이어지는 길이다. 주차장에서는 승탑전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간다. 산행 길은 임도를 가로질러 숲으로 해서 가는 길이다. 벽방산 기슭 안정사 주변에는 옛날부터 솔숲이 유명했다. 소나무가 겨울바람에는 춤을 추는 듯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데 이를‘한산무송’이라 했다. 이 소나무 숲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조선 광무 4년 1900년 선희궁(조선 영조 후궁 영빈이씨 위패사당)에서 숲을 보호하기 위해 안정사에 금송패를 내렸다. 금송패는 소나무 벌목을 단속하고 감시하는 권한을 부여한 조선왕실의 산림감시 신분증이다. 안정사에서 가섭암까지 이어지는 길은 임도를 제외하면 활엽목과 소나무 숲이 번갈아 나타난다. 시작부터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활엽수 숲이 이어지고 바람이라도 불면 진한 소나무향기가 그윽하다. 그 아름답게 보이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벽방산의 자랑 한산무송이다.

    100여 년 전 안정사는 이 일대 5개 면에 100만평의 소나무 숲을 소유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초록이 파도치는 붉은 적송 소나무 숲길로 들어서면 활엽목과 한산무송의 아름다운 느낌은 오래도록 이어진다. 예전에 가섭암에 왔을 때는 암자에 인기척이 없었고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암자 마루 댓돌에 흰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법당 문틈으로 불빛이 새 나왔다. 염불소리가 흘러나오고 사람이 있으니 절집에 온기가 돌았다. 암자를 지켜봤던 느티나무 밑에는 긴 의자도 놓였고 소망을 담아 쌓은 원뿔형의 돌탑이 반겨준다.

    가섭암은 신라 문무왕 9년(669)에 원효대사 제자 봉진스님에 의해 처음 건립됐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25년(1647)에 이르러 벽봉 화상이 중건했다고 전한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광무 10년(1906)에 취운스님이 동편에 승방 3칸을 증축했다. 가섭암은 18세기 후반 소규모 암자가 유행할 때 나타나는, 방이 큰 대방형 법당이다. 스님이 거주하는 방에 불상을 봉안하는 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큰방으로 만든 법당 형식이다. 가섭암은 원래 一자 형식이었으나 스님 방과 손님을 접대하는 누마루를 법당 좌우에서 앞으로 달아내어 현재의 ㄷ자형 건물이 되었다. 목구조의 결구(이음)방식이 다양해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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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봉암

    ▲안정사 은봉암·의상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를 버리고 임도를 몇 굽이 돌아가면 은봉암과 의상암 갈림길이다. 산행을 하든 암자를 가든 어느 쪽을 선택해도 각기 다른 길이지만 정상과 산내암자로 가는 길이다. 은봉암 가는 길을 먼저 택했다. 작은 계곡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서 옛 사람들의 소통 공간이었던 팔각정을 만났다. 화려한 등산복장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을을 만나고 있었다. 은봉암과 산정으로 갈리는 안정치에서 친구 3명과 산악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던 제판모(60)씨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운동 삼아 왔는데 위험하기도 하지만 스릴이 있단다.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것이라 하며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빠르게 내려갔다. 살아가면서 얻고자 하면 잃는다. 흔히들 걷다 보면 뭔가 채워지고 얻어가는 것이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소망이고 바람일 뿐이다. 걸으면서 얻는 것은 거의 없다. 걷다 보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과 함께하며 마음속 근심과 걱정이 사라져가고 말하지 않는 자연과 소통이 된다.

    안정사 은봉암은 안정고개에서 약간 아래 방향으로 고즈넉한 가을 낙엽이 깔린 푹신한 길을 600m쯤 걸어가면 만난다. 작은 주차장에서 가파른 자연석 돌계단을 따라 오르는데 이름 모를 자주색 꽃들이 바위 사이를 비집고 나와 반겨준다. 느티나무 몇 그루에 묻혀 있는 은봉암이 모습을 나타낸다.

    은봉암은 634년(선덕여왕 3년) 징파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약수가 유명하다. 암자에서 만나는 것은 고요함을 넘는 적막한 정적이다. 법당에 명상을 하는 사람과 이마에 땀을 식혀주는 바람뿐이다. 은봉암에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은봉암에는 높이가 6m쯤 되는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있다. 바위 한 개가 넘어지면서 해월선사라는 도인이 나타났고, 그 후 또 한 개가 넘어졌을 때 종렬선사라는 도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현재 한 개가 남아 있는데 새로 한 분의 선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 후부터 은봉암에 있는 돌을 성석이라 부르고 있다.

    은봉암 느티나무 아래 의자에 앉으니 안정사 위로 펼쳐지는 광도만의 풍경이 또 다른 행복으로 마음속으로 가득 담겨왔다. 자연이 아름답다고 해도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한곳에 머물 수는 없다. 늘 삶은 새로움의 연속성이다.

    은봉암을 떠나 길을 걸어 안정고개로 돌아오니 통영에서 왔다는 김현석(58)씨가 땀을 닦고 있었다. 우거진 풀 더미에 묻혀 녹슬고 있는 체육기구를 보며 산등성이 시설을 만들어 놓은 정책들이 옳은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우리 땅 순례를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산에서 체육기구나 팔각정을 만난다. 국민으로부터 걷은 세금은 올바르게 필요한 곳에 잘 써야 한다. 그래야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나라가 된다. 소박한 국민들은 큰 것에서 감동을 받지 않는다. 애국이 거창한 것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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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상암
    무거운 걸음으로 더 높은 산정에 있는 의상암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의상암에 가려면 임도 넓은 곳에 차를 두고 가파른 등산길을 걸어가야 했다. 지금은 여느 절집처럼 가파른 길을 만들어 차량 통행이 되도록 했다. 의상암을 거쳐 산에 오르던 등산객이 절집이 산을 망친다고 푸념을 했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벽방산 정상은 해발 660m인데 의상암이 해발620m에 있으니 차량이 이곳까지 오면 무슨 등산이냐 싶었다. 의상암 입구에서 벽방산 정상으로 가려면 왼쪽 오름길을 택해 능선을 타야 한다. 의상암은 663년(문무왕 3년)경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의상암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이어지는 산봉우리와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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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상대
    의상암의 살림이 어려운 모양이다. 법당이 누수가 돼 지붕을 비닐로 덮어 놓았다. 의상대사가 좌선하며 하늘의 공을 받았다고 전하는 의상대가 인근에 있다. 여름에는 절집 주변에 온통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꽃무릇이 화려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마산대학교 입학부처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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