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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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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오세영

  • 기사입력 : 2015-11-12 07:00:00
  •   

  • 밤에

    홀로 듣는 빗소리


    비는 깨어 있는 자에게만

    비가 된다.


    잠든 흙 속에서

    라일락이 깨어나듯

    한 사내의 두 뺨이 비에 적실 때

    비로소 눈 뜨는 영혼.


    외로운 등불

    밝히는 밤

    소리 없이 몇 천 년 흐르는 강물.


    눈물은

    뜨거운 가슴 속에서만

    사랑이 된다.


    ☞ 꿈은 때로 나룻배가 된다.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시간의 저쪽 언덕으로 싣고 간다. 아침이 봉숭아꽃에서 걸어 나오고, 어머니 텃밭처럼 정우하시던 그때! 아버지 지게로 세상을 거뜬히 지시던 그때! 슬픔 한 올 없는 저녁이 환한 나팔꽃 한 송이로 피었다 사라지던 그때! 건너갈 수 없는 ‘그때’로 꿈은 마음을 싣고 건너가, ‘그때’를 한참 뒹굴게 한다.

    허공을 찬찬히 비질하며 내리는 비. 창문을 적시며 잠 속으로 스며드는 밤비. 꿈의 멍석을 서서히 말아 버리고, 홀로 눈뜨는 어두운 방. 갈 수 없는 저쪽 언덕과 발을 뺄 수 없는 이쪽 언덕이 뒤섞인 시간의 이불을 덮고 가만히 누워 있는 어두운 방. 홀로 등불 하나 밝혀 보는 뺨에 눈물 흐른다. 홀로 걸어온 세월이 입은 흙을 씻어 내며 영혼의 보드라운 살결을 드러나게 하는 눈물, 먼 옛날 세례를 베풀던 강물 같은 눈물, 소리 없이 천 년을 흐른다. 이중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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