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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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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관계 회복의 리더십- 김명찬(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5-11-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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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 성장한다. 사람은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서로를 의지하고 협력하는 능력으로 인해 맹수들에 비해 형편없는 운동능력과 공격력을 가지고서도 맹수를 지배하고 있고, 생태계의 우두머리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관계는 한 사람이 성장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은 관계로 인한 문제가 종종 심각한 상황에 처한다는 점이다. 서로를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거나 의존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극단적인 경우가 많다. 의존할 수 없는 대상은 종종 적으로 규정된다. 즉 내가 의지할 수 없는 대상, 나를 이해해주거나 존중해 주지 않는 대상은 제거해야 하는 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상호의존성의 역설’로 보인다.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만큼 그 욕구가 채워지지 못할 때의 좌절감과 분노는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일어나고 있는 국제 사회의 테러를 살펴보면, 대개 심각한 폭력성을 반영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 간의 몰이해는 단순한 의견 차이로 끝나지 않고 폭력을 부르고 있다. 이러한 폭력성의 기원은 어디에 있을까?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폭력성, 혹은 분노의 근원으로 ‘의존성의 좌절’을 지목하고 있다. 인간은 필시 무리를 이루어 살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줄 수 없는 관계에서는 의존할 수 없는 좌절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불안과 실존적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기댈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며, 특정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유가 모두 여기에 있다.

    현재 소속된 집단의 이익과 방향에 반하는 집단에 대해서 사람들은 대개 근거 없는 적대감을 드러내곤 한다. 이것은 상당 부분 생존에 대한 강렬한 욕구에 기인한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줄이고자 한다. 홀로 있기에는 나약하고 작은 존재가 인간이다. 관계는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속한 집단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 생명을 불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국 미움은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예상하는 집단을 위해서 또 다른 집단을 미워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테러 역시 마찬가지다. 이질적인 집단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을 지키기 위해 폭력이 정당화되는 방식은 확장성의 한계를 지닌다. 폭력, 일방성을 강요하는 이들은 자기 집단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나름의 정당한 믿음이 있다. 나와 나의 집단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존엄과 생명 정도는 아깝지 않다고 여기는 것 때문에 지금 우리 인류가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다. 나와 내가 소속된 집단이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질적인 세력에 대한 폭력으로 표현된다. 타인에 대한 폭력은 나 자신의 소멸에 대한 공포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러한 공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인간은 자기 소멸의 공포를 벗어내기 위해 가장 폭력적인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의 소멸은 자기 안의 공포를 직면할 때 시작된다.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이 사라지게 될까 봐 너무 무섭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타인을 공격하기에 앞서 이해와 사랑을 호소할 수 있게 된다. 부드러운 말로 이해와 수용을 호소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닌 성숙함이다. 간디나 넬슨 만델라, 킹 목사 등은 위인전 속의 허구적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 내면의 공포를 직면하고 진정시킴으로써 자기 집단을 넘어서는 포용을 이루었다. 진정한 지도자란 자기 이익에 매몰되어 다른 집단을 배척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지도자는 두려움으로 인해 배척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수용과 포용을 통해 ‘회복적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두려움을 넘어선, 따뜻한 포용이 가능한 리더십을 보고 싶다.

    김명찬 (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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