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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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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픽션과 현실- 이일림(시인)

  • 기사입력 : 2015-11-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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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 팔리지 않는다. 이 말은 소설이 몇 권 팔리고 시집이 몇 권 더 팔리고 하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현실이 점점 픽션화돼 간다는 말이다. 픽션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한 다변화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소설가 김홍신은 사설에서 소설이 팔리지 않는 이유가 ‘현실이 소설의 소재보다도 더 소설 같기 때문이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굳이 픽션으로 된 소설책을 보지 않아도 현실에서 더 픽션 같은 사건을 접할 수 있다. SNS의 활성화에 힘입어 전에는 소설에서나 읽어보던 잔혹한 사건들을 현실은 소설보다 더 리얼하게 보여준다.

    블록버스터를 꿈꾸는 영화들, 영화도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것도 있지만, 그냥 영화라고 생각하고 봐도 우리 현실과 너무 많이 닮아있다. 실화가 아닌데도 우리 사회를 피력한, 현실을 풍자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 부분이 많다. 또 다른 면에서는 우리가 동경함으로써 끌리는 영화도 있다. SF영화가 그 한 예이다. 특히 SF 우주영화는 많은 관객 동원에 성공하고 있다. 멀게는 ‘인터스텔라’에서 가깝게는 지난달 상영한 ‘마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동경하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이기 때문에 허구인 줄 알면서도 귀와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뛰어넘는 정말 픽션 같은 실화도 많다. 예를 들면 동성 커플이 알고 보니 어릴 때 헤어진 형제였다든가 천인공노할 패륜범죄라든가 하는 사건들이다. 올해로 3년 4개월 만에 진행된 남북 이산가족상봉은 어떤가. 43년 동안 어머니를 못 만난 한 납북어부, 신혼 때 생이별한 부부의 기막힌 현실 등 구구절절한 사연들로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픽션 같은 현실은 때로 나라의 현실을 대변하기도 한다. 자고 나면 큰 배들이 침몰하고,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언론들은 헤드라인마다 소설의 상상력을 능가하는 충격적인 기사들로 매스컴을 채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웬만한 자극적인 사건에도 사람들은 이제 놀라지도 겁먹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기만을 바라고 한편으로는 자기 일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그럴 때 해소 방법을 찾는다.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항설로 위무하는 것이다. 이구동성으로 비판·토론하는 것,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 안의 불안을 씻어내고자 또는 누군가에게 전가시키고자 하는 심리를 드러낸다.

    출판업계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점점 변형돼 가고 있다. 21세기 들머리를 지나고부터 아날로그형 정보 (p-콘텐츠)보다 디지털형 정보(e-콘텐츠)가 앞서나가고 있다. 독자들은 공유 방식의 웹진 같은 인터넷 문예지를 선호한다. 얼마 전 유명 문인들을 배출한 민음사가 40년 역사의 문예지를 폐간하면서 대체 ‘그릇’으로 웹진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e-콘텐츠의 붐은 출판업계에도 새로운 방향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신춘문예 응모에도 영향을 준다. 젊은 작가 지망생들은 ‘돈이 되는’ 드라마작가나 판타지 성향, 영상물 관련 쪽으로 지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불가피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있다. 언론을 달구는 모방과 표절이 빈번한 시대도 각박한 현실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디지털 좋은 시대지만 세상은 과학적 증명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허구도 허구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동반한다. 이는 동경을 넘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문제로서 인간의 한계를 대변한다. 허구든 현실이든 우리가 동경하는 꿈, 즉 가능성에서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비껴갈 건 잘 비껴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일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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