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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개취 갤러리 (3) 아름다운 도살자, 프랜시스 베이컨

  • 기사입력 : 2015-11-20 15: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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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인이미지십자가 책형. 1965년 作
    '충격적이다. 기괴하다. 끔찍하다. 징그럽다. 고기 같다. 무엇인지 모르겠다'. 대학생 때였을까.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 작품을 도서관 구석에 꽂혀있던 어느 한 미술책에서 발견했을 때 '이런 것도 예술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림이긴 하니까 작가는 의도한 것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고,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다른 그림들과 책들을 찾아 읽었다.

    유튜브를 통해서 그가 살아생전 인터뷰를 했던 영상과 다큐멘터리도 찾아보기도 하고 그를 소재로 한 영화도 봤었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지만, 솔직히 지금도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생기면 먼저 드는 생각은 '이해 불가'다. 나에게 베이컨의 작품은 과거나 현재나 너무나 어려운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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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습작. 1969년 作
    작품은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가격은 상당하다.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개의 습작(Three Studies of Lucian Freud)'이라는 작품은 지난 2013년 11월 12일 미국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4240만 달러(약 1528억원)라는 가격에 낙찰됐다. 이 가격은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가장 비싼 그림이었던 뭉크의 '절규(1억1992만달러)'를 제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그룹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이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회 기자간담회에서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 보며 노래 '배배'를 쓰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어느날 박물관에서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을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야하게 느껴지며 마음이 먹먹해졌다'며 '그 작가의 그림을 찾아보며 음악을 만들면서 이래저래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 기괴한 그림이 비싼 가격을 받고,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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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 오른쪽-프랜시스 베이컨,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를 본뜬 습작
    '왜냐하면 나는 늘 사람들을 변형하여 외관을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그릴 수 없다. 나는 내 그림을 보다 더 인위적으로, 보다 더 왜곡되게 만들고 싶다' -프랜시스 베이컨-

    왼쪽 그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가 1650년쯤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요청으로 그의 초상화를 그린 작품이다. 교황 인노켄티우스는 매우 까다로운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하는데 게다가 성격이 급하고 자기 일에 매우 철저한 사람이었다. 벨라스케스는 이 작품에서 붉은 모자와 흰 레이스로 장식된 법의를 통해 강한 색채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또 교황의 눈썹과 눈빛, 굳게 다문 입 등 표정을 통해서 그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해 한다.

    반면 오른쪽 그림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지난 1953년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를 본뜬 습작인데 교황의 권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굳게 다문 입은 어디 갔는지, 입은 벌어지다 못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인 것 같다. 눈도 매우 크게 그려진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히스테리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당시 교황 내면에 감쳐왔던 권위의 부담감 즉 히스테리를 베이컨식으로 해석해 그려진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듯 베이컨은 기존 작품을 재해석 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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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화 1946년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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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랜시스 베이컨
    정육점의 고기, 예수 십자가 책형, 비명, 남자, 교황.. 베이컨이 수십년에 걸쳐 관심 있게 다룬 주제들이다. 베이컨은 이러한 주제를 반복해서 변형해 그리면서 시각적이기보단 굉장히 촉각적으로 그렸다. 그러다 보니 왜곡되고 뒤틀린 형상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들이 관람자로 하여금 신선한(?) 감각의 자극을 선사한다. 즉 그림을 눈으로 인식하려는 시도를 봉쇄함으로써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는 그의 그림을 두고 '베이컨은 '짐승에 대한 연민이라고 하지 않고 차라리 인간은 고기다'라고 말한다. 고기는 인간과 동물의 공통 영역이다. 화가는 확실히 도살자다'고 말했다.

    이러한 터프함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서 무서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

    '나는 결코 무시무시하게 보이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작품 중 어떤 것도 삶의 공포스러운 점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들을 관찰한 다음에 그 밑바닥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정육점에 들어가서 고깃덩어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살피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다른 생명을 잡아먹고 사는 사람에 깃든 모든 공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중)-

    베이컨의 작품은 여전히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그의 그림을 공부하고 있다. 처음 접했을 때의 이미지는 기괴하고 징그럽고 혐오스러웠지만, 볼수록 생각할 여지가 많고 자꾸 눈길이 간다. 평생 이렇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작가 혹은 작품이 있다면 나름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고휘훈 기자 24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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