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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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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뒷모습 보기- 홍진기(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5-11-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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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이은 비 지나가고, 한 이틀 가을볕이 동백잎에 내리기에 ‘아이고, 비는 영영 떠났구나’ 했더니, 집나갔다 돌아오는 강아지처럼 어제 그 비가 돌아왔다. 고마운 비, 이왕에 시작했으니 넉넉하게 내려주기를 마음으로 빌고 빈다. 풀잎에 내리면 녹우(綠雨)가 되고, 꽃밭에 내리면 꽃비가 되는 비다. 이 빗물이 모여 흘러가는 작은 물길을 도랑이라 하고, 도랑물이 모여 많이 흐르는 물을 냇물이라 한다. 냇물이 어우러져 강물이 되는 것.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을 유정이라 메겨둔다. 유정 (有情)이라 해도 좋고, 유정(流情)이라 불러도 좋다. 도랑물처럼 흘러도 좋고, 강물처럼 흘러도 좋다. 정이 도랑물처럼 흐르면 너와 나, 우리 이웃이 따습할 것이며, 강물처럼 흐르면 온 나라가 평화로워 누리에 크낙한 빛이 되고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웃이나 남을 위해 크고 작은 것을 나누고 도우는 것을 봉사(奉仕)라 하고, 나라를 위해 내 몸을 바치고 정을 펼쳐내는 것을 봉공(奉公)이라 한다. 봉사의 길이 도랑물이면 봉공의 길은 강물이다. 녹우와 꽃비가 모여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듯, 봉사와 봉공의 보람이 어우러져 사람의 가슴을 데워주고, 내 나라를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어깨 다독여주는 아름다운 사람살이가 예서 싹트고 자라난다.

    물이 흐르는 길도 길이요, 사람 다니는 길도 길이다. 천지에 빈 데는 많지만 빈 데라고 모두가 길이 될 수 없듯이 봉사나 봉공의 길도 그렇다. 냇물이 흐르다 바위를 만나면 그 낙차(落差)로 휘감아 돌며 냇물소리를 내고, 강물이 가다가 낭떠러지를 만나면 폭포가 돼 폭포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둘 다 살 맞비비며 감탄하는 소리다. 감탄하는 영혼은 아름답고, 멋이 꽉 찬 영혼이다. 감탄하는 영혼은 가치 있는 영혼이다.

    사람과 더부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날마다 서로와 마음 스치며 산다. 그런데 우리가 내는 소리가 과연 감탄하는 영혼의 소리인가. 스치는 바람과 어우르는 추녀 끝의 풍경소리처럼 아름다운 영혼의 울림인가. 꽃비처럼 녹우처럼, 냇물처럼 강물처럼 누구를 위해 내 영혼을 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은 눈멋에 잘 홀리며 쉽게 매달린다. 물론 그것도 좋다. 냉수를 마시고 이를 쑤시는 것도 멋은 멋이다. 그러나 참 삶의 시그널이 없는 멋은 겉멋이며 실없는 빈 멋일 뿐이다. 떠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시인이 부른 노래를 우리는 알고 있다.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의 가는 길에 복이 있으라고 비는 마음 아닌가. 당(唐)의 시인 두목(杜牧)은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 붉게 물든 나뭇잎)이 봄꽃 못지않게 곱다고 붓끝을 세워 가을을 찬 (讚)했다. 이 또한 제 갈 길을 알고 가는 자연의 도를 우러른 말일 터다.

    우리 서울에도 큰 물길 있다. 한강이다. 장강후랑퇴전랑(長江後浪推前浪-뒤에 오는 물이 앞의 물을 밀면서) 유유히 제 길을 가고 있다. 제 몸 추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 유유한 물길을 날마다 보며 봉공하라고 지어준 반구형 큰 집의 주인들이 다니는 한길도 있다. 과연 그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운가. 내사 모른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공을 세우고 나면 물러가라는 말이 있긴 한데-공성신퇴(功成身退)- 공성을 못 보았으니 신퇴를 어찌 보랴. 오래전에 읽은 목민심서(牧民心書) 한 구절이 떠오른다.-관리가 한 푼을 탐하면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는. 강물이 길을 막고 저러는데 도랑물, 날 어쩌란 말이냐!

    홍진기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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