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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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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덩치만 크다고 어른 된 것은 아니다- 정정헌(마산대 외래교수)

  • 기사입력 : 2015-12-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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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나라가 해마다 겪는 수능 열병에서 벗어난 지가 달포가 되지 않았다. 조만간 수험생들은 사회라는 더 넓은 세상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배워나가야 하고,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만 17세 이상이 되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면 성인이 된 것으로 생각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성인의 나이는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 민법상의 성인 나이는 선거권과 마찬가지로 만 19세이나, 형법상으로는 그보다 훨씬 적은 만 14세 이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물학적 나이가 ‘진정한 어른 됨’의 척도는 아닐 것이다.

    개인이 새로운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획득할 때 행하는 의식이나 의례를 말하는 통과의례(通過儀禮)는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거치게 되는 과정이다. 전통적으로 어느 나라나 사회를 막론하고 출생·성인·결혼·상례 등과 같은 의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들은 개인이나 가족은 물론 공동체사회에서 매우 뜻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성인식은 한 개인적으로는 성장과 자각의 변화 기점이고, 사회적으로는 구성원의 새로운 영입을 의미하기 때문에 특별한 의례로 간주했다.

    우리의 경우에도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사례(四禮)는 중요한 가치관이었다.

    특히 관례는 사대부 가문의 남자 자제가 15세 이상이 되면 어른이 되었다는 표시로 상투를 틀어 갓을 씌우는 예식이다.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시는 법과 자(字)를 받음으로써 공동체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었음을 참석자들에게 공표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더 이상은 철없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주어졌음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일찍이 신라시대에는 나라의 인재를 길러내는 제도로 세속오계(世俗五戒)가 있었다. 남자의 나이가 15세가 되어 화랑이 되면 사군이충(事君以忠)·사친이효(事親以孝)·교우이신(交友以信)·임전무퇴(臨戰無退)·살생유택(殺生有擇)이 중요한 성인의 덕목이었다. 이를 통해 어린이에서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이 되는 가치와 의미를 담았다.

    아프리카 문화권의 성년식은 이런 성장과 어른 됨의 의미를 표현함에 있어서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많은 부족들이 얼굴이나 등에 상처를 내어 특별한 표시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얼마 전 언론에 남아공 성인식이 화젯거리가 되었듯이 혹독한 겨울철 6주 동안 할례와 생존시험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더 가혹한 성년식도 지구촌 곳곳에서 행해졌다. 현재적 가치관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원시사회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강해야 하며, 야생동물들과 싸워야 하고,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므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약하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칫 부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예전의 성인식에서 육체적 고통을 요구하거나 그것을 인내하는지, 시험을 통해 지혜를 갖추고 있는지의 여부가 성인식의 주요한 내용이었음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런 점에서 성인식이 담고 있는 속살의 의미는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인생은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누구나 앞으로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될 수많은 난관을 해결해야 하며, 과거보다 훨씬 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을 극복하고 삶의 지혜까지 갖출 것을 요구한 성인식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며, 곧 사회로 진출할 사회초년생들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기도 하다.

    정정헌 (마산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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