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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도광회적(韜光晦跡)- 빛을 감추고 자취를 숨긴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5-12-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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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어(論語)’ 첫 머리에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말이 있고, ‘중용(中庸)’에 “남에게 알려지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는다[不見知, 不悔]”라는 말처럼,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거나 후회하지 않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은 경지에까지 가면, 인격의 정도가 대단한 사람이다. 자기 자랑하지 않는 사람보다 몇 단계 더 위라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분을 필자는 보았다.

    바로 지난 12월 7일 새벽 향년 84세로 별세한 모하(慕何) 이헌조(李憲祖) 회장이다.

    이분은 1932년 의령군 내제리(來濟里) 벽진이씨(碧珍李氏)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래 학자가 되려고 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1957년 잠시 외가와 인연이 있는 럭키화학에 일 봐주러 갔다가 그만 기업가가 됐다. 30년 최고경영자로서 지내면서 오늘날 LG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켜 놓았다.

    이 분은 노사(勞使)라는 용어 대신, 노경(勞經) 관계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노동자 대 사용자라는 적대관계에서 노동자와 경영자라는 동반관계로 바꾸어, 노동자들의 불만을 해소했다.

    또 LG인화원(人和苑)이라는 것을 만들어 모든 구성원들의 인화를 강조해, 사람 위주의 경영 기반을 다져 놓았다. 경영학을 전공한 어떤 경영자들보다도 더 경영을 잘했다. 왜? 인간존중 위주의 경영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경영철학은 ‘논어’, ‘맹자’ 등 유교 경전과, 유교 가문인 그의 집안 교육에서 나왔다. 평생 ‘논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경영자로서의 명언 가운데, ‘붉은 신호면 선다’,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서는 초가삼간을 태운다’라는 말이 있다. 원칙을 지키고, 조그만 불량(不良)도 용납 안 한다는 의미이다.

    학자가 아닌 기업가의 길을 갔지만, 늘 학문에 관심을 두고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학계를 늘 도왔다. 철학 분야의 각종 학회를 지원했고, 2010년에는 실시학사(實是學舍)에 연구기금 80억원을 쾌척했다. 그리고는 자기 이름은 내지 못 하도록 했다.

    2014년에는 경상대학교에 ‘강우문화연구기금(江右文化硏究基金)’ 5억원을 기증해 경상우도(慶尙右道) 지역의 전통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줬다.

    이런 선행을 소개하는 글을 두 차례 써서 신문에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답이 없었다. 만났을 적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니, 이분의 반응은 “허 교수가 아직도 정말 나를 모르는구나”였다고 한다.

    *韜 : 감출 도. *光 : 빛 광.

    *晦 : 감출 회. *跡(=蹟) : 자취 적.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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