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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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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첨취각설(尖嘴刻舌) - 날카로운 주둥이에 각박한 혀, 날카롭고 야박한 말투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5-12-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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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명종 때 상진(尙震)이라는 유명한 정승이 있었다. 좋은 집안에 이름난 조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처신으로 명정승의 반열에 올랐던 분이다.

    그 당시 사주(四柱)를 잘 보는 홍계관(洪繼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상 정승이 젊을 때 그에게서 사주를 보았는데, 사망 연월일까지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홍계관이 누구의 사주를 예언해 틀린 적이 없었다.

    상 정승도 수의(壽衣)를 준비해 두고, 숨을 거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무 일 없이 그날이 지나갔다. 그래서 홍계관을 찾아가 “올해 며칠 날 내가 죽을 줄 알았는데, 아무 일 없이 지나가니 어찌 된 일이요?”라고 물었더니, 홍계관이 “음덕(陰德)을 쌓으면 수명이 연장되는 수가 있습니다”고 답해 주었다.

    상 정승이 “혹 그럴지 모르지. 옛날에 대궐에서 임금님 수라 준비하는 일을 하던 대전별감(大殿別監)이 자기 집 혼사에 쓰려고 임금님이 쓰시던 금 그릇 몇 벌을 몰래 가져 나오다가 어디 놓고 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지키고 기다리니 그 별감이 와서 다시 찾아간 적이 있지요. 죽을 목숨 살려 주었다고 백 번 절을 하고 갔지요”라고 이야기하자, 홍계관이 “공께서 사주보다 더 오래 사시는 것은 그 일 때문일 겁니다”고 했다.

    상 정승은 모든 면에서 늘 관대하게 사람을 대했고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같이 벼슬하던 판서(判書) 오상(吳祥)이 어느 날, “복희 임금 때의 즐거운 풍속은 지금 쓴 듯이 없어졌나니, 단지 봄바람 한 잔 술 사이에만 있네(羲皇樂俗今如掃, 只在春風杯酒間)”라고 시를 지었다. 그러자 상 정승이 보더니 “말이 어찌 그리 각박하시오?” 하고는 “복희 임금 때의 즐거운 풍속이 지금도 아직 남아 있나니, 봄바람 한 잔 술 사이를 보시오(羲皇樂俗今猶在, 看取春風杯酒間)”라고 고쳐 주었다.

    거의 같은 뜻이지만, 오 판서의 시는 부정적이고 각박한 데 비해서 상 정승의 시는 긍정적이면서 푸근한 데가 있다. 조금의 표현 차이가 이렇게 다른 것이다.

    2001년부터 교수신문에서 해마다 연말이 되면 전국 교수들에게 문의하여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라 하여 발표하는데, 거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말이다.

    교수들이 하는 일이 문헌이나 사회현상을 보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아 비판적인 안목이 다른 사람보다 발달한 경향이 없지 않지만, 15회에 걸쳐 긍정적인 말은 한두 번이고, 거의 전부 부정적이고 암울한 말을 선정했다.

    정치가 워낙 비정상이라 냉정한 비판이 필요하겠지만, 국민을 위해서 좀 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말로 국가사회를 인도할 필요가 있으리라고 본다.

    *尖: 뾰족할 첨. *嘴: 주둥이 취.

    *刻: 새길 각·각박할 각. *舌: 혀 설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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