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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아버지의 고무신- 예자비

  • 기사입력 : 2016-01-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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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그린다. 하얀 고무신에 정성을 들여 다섯 개의 빨간 꽃잎과 중앙에 노란 수술도 그려 넣는다. 붓 끝에서 작은 꽃밭이 생겨났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꽃신이 될 것 같다. 색감은 깔끔하지만 조금 밋밋한 느낌이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물감을 섞어 초록색 잎을 피워놓으니 바람이라도 살랑대며 불어올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비천상(飛天像)이라도 그려보고 싶지만, 붓끝은 그런 마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단장을 마친 꽃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할 것인지, 아니면 장식용으로 두어야 할 것인지 망설여진다. 때가 묻어서 씻게 된다면 애써 그려 넣은 꽃물이 빠지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앞서기도 한다. 가진 만큼 걱정도 많아진다고 하더니, 산란한 마음이 저울질을 한다.

    어린 시절 일터에서 돌아오신 아버지의 고무신을 씻는 것을 좋아했다. 기둥을 받쳐주는 주춧돌에 세워 말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때로는 깨끗이 씻지 않고 말리게 되면 신발 뒤축에 고인 구정물이 내 손끝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볏짚을 접어서 수세미를 만들었다. 거기에 검지도 누렇지도 않은 거무칙칙한 색의 빨랫비누를 묻힌 뒤 힘주어 빡빡 밀어주면 고무물때가 빠져 나왔다. 다시 한 번 그렇게 씻으면 빨래판 돌은 하얀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았다. 내 작은 손으로 고무신을 씻은 후, 한 바가지의 물을 부으면 시원한 물로 땀을 훔친 아버지의 얼굴처럼 말쑥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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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평소 외출할 때가 아니면 고무신을 신었다. 잿빛 하늘이 여명에 물들기 전부터 5촉짜리 전구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새끼줄을 꼬며 기도하셨다. 새끼틀은 가릉 가릉 힘든 소리를 내며 나의 새벽잠과 뒤섞여 귓전에 맴돌았다. 고무신은 늘 아버지의 발바닥에 착 달라붙어 따라다녔다. 밭 언덕을 의지해서 소꼴을 벨 때에도, 아침 일찍 이슬 젖은 논둑으로 물꼬를 보러 갈 때도 함께했다. 이른 새벽부터 어스름 어둠이 내릴 때까지 하루의 일과를 고스란히 같이 보냈다. 가끔 장화를 신을 때도 있었지만 고무신은 촌부의 고된 삶의 무게를 끈끈하게 견뎌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점심 식후에는 오수의 달콤한 시간을 즐겼다. 그 사이 나는 반나절을 따라다니며 지쳐 몰골이 되어 돌아온 고무신을 씻었다. 마치 나에게 부여된 임무처럼 행했다.

    오래 신어 볼품이 없어진 신발은 보통 발꿈치 뒤쪽 연결 부분부터 터졌다. 그리고 앞쪽 발가락 닿는 부분 순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신고 나면 거칠고 힘들었던 삶을 말해 주듯이 신발 전체에 작은 금들이 무수히 생겨났다. 그렇게 오래 신어 낡아버린 고무신은 씻어도 새것처럼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새 볏짚수세미로 밀고 또 밀어도 하얀 물때가 나오지 않았다. 이는 금 사이사이마다 이미 고무 성분은 빠지고 때가 물들어 버린 탓이었다.

    흰 고무신에 꽃그림을 그려 넣고 보니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래서인지 가끔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멋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가슴 한 구석이 아려 오기도 한다.

    꽃으로 단장한 고무신을 신어본다. 오른발을 내딛는다. 발끝에서 말랑한 고무재질의 느낌이 전해져 온다. 왼발도 조심스럽게 내디뎌본다. 무거웠던 마음도 날아오를 듯하고 발은 한결 가벼워진다. 어린 시절, 봄이면 겹겹이 걸쳐 입었던 두터운 겨울옷을 벗고 가볍게 봄옷으로 단장했을 때처럼 기분이 가뿐하다.

    꽃 장식으로 단장한 고무신을 신고 산책길로 향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비음산을 등지고 있다. 몇 발짝 걷다 보면 산을 오르는 초입에 들어선다. 산사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산길을 올라 갈 것인지 그냥 돌아설 것인지 잠시 망설여진다. 새 고무신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험하지 않는 둘레길을 택한다. 정적을 깨우는 종소리는 덩그렁~ 하고 크고 무겁게 깊은 여운을 드리우며 산길에 잦아든다. 내딛는 발자국마다 흙의 감촉이 있는 그대로 전해진다. 작은 돌들이 둥글고 뾰족하게 누워 있거나 기다란 나뭇가지가 발 아래서 미끄러지듯 밟히면 짜릿한 전율이 다리를 지나 온몸으로 퍼져온다. 가끔은 간지럽기도 하고 때로는 허방을 짚어 넘어지기도 한다. 솔밭 오솔길을 따라 한 바퀴 더 돌아볼까 하고 망설이다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나무의자에 걸터앉는다. 한 시간도 채 걷지 않았는데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온종일 고무신을 신고 다녔던 아버지의 발은 아픔을 넘어 감각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무디어지지 않았을까.

    철없이 밤이 이슥하도록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부모님께 야단을 맞을까봐 눈치를 보며 대문 앞에서 한쪽 신발을 힘껏 벗어 던졌다. 신발이 바로 놓이면 안심이 되었고, 거꾸로 엎어지면 어김없이 야단을 맞았다. 하지만 마당에서 등짐을 지고 밤하늘을 살피시던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시며 큰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무신은 땅의 기운과 함께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우리들만의 주술까지 떠오르게 한다. 값비싼 구두나 운동화 같은 다른 신발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교감이다. 추억은 늘 가슴속 깊은 곳에 어려 있나 보다.

    제 이름의 몫을 다한 초라해진 고무신을 미련 없이 버렸듯이 이승과의 인연이 다한 날, 곰삭은 육신을 벗어버리고 당신도 떠나갔다. 받아만 왔던 부성애다. 이제 내가 예(禮)를 다하려 하니 당신은 이미 내 곁에 없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인연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우리의 삶속에 만나는 모든 인연들의 아픔을 말하지 않아도 안아 줄 수 있고 힘이 될 수 있다면 외로움은 반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나 또한 그렇게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흑백사진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버지다. 꽉 다문 입술과 동그랗게 말아 쥔 주먹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침묵으로 일관하신 당신, 심연에 감추어둔 사랑을 하나둘 더듬어본다. 무심하게 보내버린 세월은 이십 년을 넘어서고 있다. 살아생전 한 켤레의 신발도 사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애달픈 그리움만 간절하다.

    하얀 고무신 한 켤레를 영전에 올린다. 수를 놓은 앞쪽의 넓은 부분에 내 마음이 듬뿍 물들어 있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곱게 단장한 새 꽃신을 신은 아버지는 길을 나서며 채비를 서두를 것이다. 꽃신에 담긴 당신의 영혼이 마치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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