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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김지율(시인)

  • 기사입력 : 2016-01-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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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다.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또 다른 한 해가 이렇게 와 있다.

    새해 아침마다 작년과 달라져야 한다고 몇 번씩 고민하고 각오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성격이다. 올해는 성격도 바꿔보고 사람들의 관계에 좀 더 적극적이고 싶어 검은색 운동화를 샀다. 기분이 좋아지는 새해 아침이었다.

    관계에 대해선 책도 많이 읽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단히 겪었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겐 여전히 제일 어려운 문제다.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서툰 사람이 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이타심이나 이기심 그리고 개인주의라고 일괄해서 말하기엔 너무 섣부른 요즘의 인간관계에 대해 문득 생각이 많아지는 이즈음이다.

    각자의 불안에 편승한 유대에 대해, 목적에 따라 쉽게 관계를 지우고 만들며 서로를 고발하고 폭로하는 것에 대해, 모두 그것에 분노하지만 제대로 분노할 방법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이제는 가만히 있는 사람이 바보가 되고 왕따가 되는 시대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에 빠른 대답이 없다면 분명 왕따가 될 확률이 높다. 그 많은 소문과 관계들이 어디서 생겨나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그것에 짓밟히는 사람도 있고 더 명랑해지는 사람도 있다. 단지 유대를 위한 것이라면 나는 그것으로부터 왕따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이 모여서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해낸다. 서로를 챙겨주고 아끼는 관계는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그것은 말이나 행동보다 먼저 마음이 가는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너무 빠른 이해와 움직임 속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너의 곁에 앉아도 나의 마음을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너의 마음을 다 들어도 내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을 때, 나는 가만히 혼자 있는 시간이 된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지만, 섬세하고 서늘한 혼자의 시간은 관계에 대한 불성실이며 반칙일지 모르지만 섣부른 이해에 편승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서로의 이해와 오해가 엉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면 말이다. 제대로 무너지고 해체되는 경험은 어떤 관계와 한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운동화를 신고 걷는 길은 편하다. 흙에 찍힌 발자국이 깊다. 오랫동안 눈 속에 묻혀 있다 불어오는 바람은 차갑고 투명하다. 물에 젖지 않는 요령보다는 익사의 두려움을 안고 범람하는 강물 속에 몸을 던져 헤쳐 나가는 것이 모든 공부의 요체라고 어느 책에서 본 것 같다. 오늘은 그 말을 관계에 대입해서 생각해 본다. 비판적 사고와 감수성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관계. 진정한 창의와 믿음의 관계는 근기 있고 성실하게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새해엔 혼자보다 여럿이 있고 싶다. 삶의 태도를 정직한 관계 속에서 배우고 싶다. 나의 말보다 너의 말을 더 많이 듣고 침묵하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느리고 굼뜬 기질도 노력해야겠다.

    나르시시즘적인 유아적 관계가 아니라 메타적 시선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관계 속에서 더 큰 나를 경험하고 만나고 싶다. 비인부전 (非人不傳)에 숨겨져 있는 무서운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시 한 줄이 힘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떨어져 내리는 꽃잎이 바위를 뭉개고 떨어지는 꽃잎이 혁명 같다고 했던 시인은 김수영이다. 꽃잎 같고 혁명 같은 그 모든 존재와 인연에 고개를 숙이는 새해의 어느 아침이다.

    김지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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