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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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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붉은 원숭이 - 추송웅 선생님을 추억하며- 김재수 (영화감독)

  • 기사입력 : 2016-01-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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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병신년(丙申年) 붉은 원숭이를 생각하면서 지금은 까맣게 잊힌 한 예술가를 언급하려고 합니다. <추송웅>입니다. 그는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서 1985년 저 세상으로 가실 때까지 이 땅에 모노드라마를 온전히 뿌리 내리신 분이십니다. 지난 12월 29일은 추송웅 선생님이 저세상으로 가신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나는 그 며칠 전에 추 선생님의 차남인 추상록 감독(위안부를 소재로 한 ‘소리굽쇠’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을 북한산 언저리에서 만나 함께 탁주를 마셨습니다. 삼일로 창고극장에 <떼아뜨르 추>를 걸고 <빨간 피터의 고백> <우리들의 광대>를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유니크한 배우의 자세를 놓지 않으셨던 선생님을 추억했습니다.

    추송웅 선생님은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공부도 잘하고 잘생겼지만 유독 그만 키가 작고 사팔뜨기로 놀림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연극에 대한 꿈을 키우며 중앙대 연영과에 입학해 ‘경상도 꼬마’ ‘조물주의 실패작’이라고 불리면서도 연기연습에 매진해 성격배우로서 독특한 희극적 연기술을 개발해 소극풍(笑劇風)의 추송웅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셨습니다. 자신만의 코미디 캐릭터로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풍자와 해학으로 전 지구인에게 감동을 준 찰리 채플린적 삶이었다면 좀 과장일까요.

    <빨간 피터의 고백>과 <우리들의 광대>는 대한민국 연극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빨간 피터의 고백>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가 원작으로 아프리카 황금해안에서 사냥꾼의 총을 맞고 생포된 원숭이가 자포자기로 인간화에 매진하지만 그 끝은 결국 서커스의 원숭이였습니다. 원숭이는 학술원 회원 앞에서 ‘인간화’ 과정을 보고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분노와 좌절, 그리고 문명화된 인간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물론 자신이 인간화 과정에서 겪은 스스로에 대한 환멸도요.

    추송웅 선생님의 원숭이는 신산하였지만 억압의 유신시절과 폭압의 군사독재 시절에 대학가와 지식인 그룹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퀴퀴한 삼일로 창고극장 삐거덕거리는 객석을 가득 매운 관객 앞에 철제 사다리와 그네가 달린 작은 우리가 전부인 무대 위에 사선으로 싸늘한 핀 라이트가 괴상한 몸짓으로 나타나는 빨간 피터 추송웅이 생각나는 오늘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설가이자 시인인 작가 장석주의 표현을 빌리면, 추송웅이 자유를 뺏긴 원숭이를 연기하면서 그가 먹은 ‘700개의 바나나, 500근의 포도, 관객들이 땀을 닦으라며 던져준 300여 장의 손수건’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또 모노드라마 공연 1000회를 돌파하며 1985년 작고할 때까지 482차례 공연으로 관객 15만2000여명의 유례 없는 <빨간 피터의 고백>이 던지는 의미는 또 무엇일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 추송웅 선생님은 없습니다. 그가 남긴 <떼아뜨르 추>는 삼일로 창고극장으로 남았다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추송웅 선생님의 삼남매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겠다며 부활시킨 <떼아뜨르 추> 역시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간판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될까요? 경남 고성이 낳은 영혼의 예술가 추송웅을 기억의 저편으로 넘겨야 할까요? 한 시대의 자화상을 천의 얼굴로 인생을 연기한, 영원히 돌아눕지 않을 예술가 추송웅에게 그의 이름을 단 작은 극장 하나 없다는 사실에 깊은 상실의 자괴감이 드는 이유가 비단 나 혼자일까요?

    찰리 채플린은 말했습니다. “나는 그저 한 가지, 오직 한 가지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광대다. 그로 인해 나는 어떤 정치인보다도 높은 차원에 오르게 된다.”

    김재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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