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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개취 갤러리 (5) 점과 그물에 대한 강박증을 예술로 승화시킨 '쿠사마 야요이'

  • 기사입력 : 2016-01-18 14: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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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사마 야요이. /출처: 구글이미지/

    "미술이 아니었다면, 나는 오래전에 자살했을 것이다"

    한 여자가 있었다. 어릴적 꽃과 새, 호박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녀는 밖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다락방에 올라가 그림으로 남겼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여자가 그림을 그려서 뭐하겠냐고, 어떻게 먹고 살 수 있겠느냐"며 꾸지람을 하기 일쑤였다.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내면은 차츰 병들어 가기 시작했다. 결국 정신질환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병은 평생 그녀의 뒤를 따라 다니게 됐다. 그러나 그녀는 병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을 예술로 승화시킬 줄 알았다.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의 유복한 가정에서 넷째로 태어난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1929~)는 어렸을 때부터 정신질환을 앓았다. 10살 무렵부터 심각한 착란증세를 일으켰지만,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너무나 보수적이었고, 미숙했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고 돌발적인 행동을 병이라 인식하지 못한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어린 시절은 이렇게 이해받지 못한 상황의 연속이었고 마음속에는 깊은 상처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치유되지 못한 채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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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을 하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 /출처: 구글이미지/

    10살 때 어머니를 그린 초상화에서 그녀의 병적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어머니의 얼굴을 온통 점으로 표현했기 때문. 이러한 표현은 어머니를 사라지게 하고 싶은 원망의 표현이라고 한다.

    "어릴적에 제비 꽃밭에 들어가면 제비꽃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는데 제비꽃들과 말을 하다 보면 모든 사물이 사람처럼 다가왔다. 너무 놀라서 다락방으로 뛰어들어가서 떨었다. 그런 경험들에 대해서 그림으로 그렸다"

    착란 증상 등 정신이상을 경험한 그녀의 눈에는 어떠한 것들이 보였을까? 그녀는 집 안에 있던 붉은 꽃무늬 식탁보를 본 뒤 눈에 남은 잔상이 온 집안에 보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그것은 둥근 물방울 무늬(dot)와 망(net)으로 변형돼 계속해서 시선과 자신의 신체에까지 따라붙었다. 이것은 결국 그녀가 평생에 걸쳐 연구하고 작업하게 되는 중요한 예술 소재가 된다.

    쿠사마 야요이는 1948년 엄격한 도제식 학풍을 고수하는 교토시립예술대학에서 전통 일본화를 배우면서 미술을 시작한다. 그리고 1952년 그녀가 23살 때 마쓰모토 시민회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나가노 대학의 정신 의학 교수인 니시마루 시호 박사에 의해 비로소 자신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의 병명은 '강박신경증', '편집증', '불안신경증'으로 불쾌한 감정을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압박이 커져 일정한 행동을 되풀이 하는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메인이미지점 /출처: 구글이미지/
    메인이미지그물 /출처: 구글이미지/

    "점은 태양의 형태를 지녔다. 태양은 세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에너지에 대한 상징이다. 또한 점은 달의 형태를 지녔다. 달은 차분하면서도 둥글고 부드럽고 색깔이 다양하면서 무감각하다. 점은 움직임이 된다. 결국 점이 무한함의 방식인 것이다" 점과 그물에 대한 강박증이 더해지자 그녀는 이러한 것들을 분출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했고 그것은 예술로 연결됐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술가가 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곤혹스러운 병, 불안신경증, 강박증과 편집증이 원인이다. 똑같은 영상이 자꾸 밀려오는 공포, 어둠 속에서 언제나 반복하면서 하나의 벽면을 타고 뻗으며 증식하는 하얀 좁쌀 같은 것이 보이면 넋이 둥둥 내 몸에서 빠져 나간다. 귀신에게 빼앗길 듯싶은 넋은 스케치북 위에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잠깐 낮잠을 잔다. 아, 이것으로 오늘까지 나는 살아있다" 그의 고백이다. 무한이란 개념은 이런 광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다. 작가는 강박과 환각을 치유하고자 무의식의 예술 행위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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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활동한 쿠사마 야요이. /출처: 구글이미지/

    이후 1957년 그녀는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16년 동안 예술가로서 활동한다. 그녀의 '무한 망사 Infinity Net'연작과 '물방울무늬 Polka Dot'과 같은 반복적 집적 이미지는 팝 아트의 거장인 앤디워홀에 영향을 끼쳤으며, 어린시절 가족으로부터 구속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들은 루이스 브루주아와 같은 페미니즘 예술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림 외에도 60년대 후반 들어서는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 해프닝과 퍼포먼스를 펼쳤고 독립영화 제작도 한다. 시, 수필, 작곡까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그녀였지만 1973년 돌연 뉴욕을 떠났다. 16년 동안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높은 가격의 작품료를 받기도 했지만, 그녀의 내면은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어느 날 캔버스 전체를 아무런 구성없이 무한한 망과 점으로 그리고 있었는데 내 붓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캔버스를 넘어 식탁, 바닥, 방 전체를 망과 점으로 뒤덮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내 손을 봤을 때 빨간 점이 손을 뒤덮기 시작했고 내 손에서부터 점이 번지기 시작해서 나는 그 점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점들은 계속 번저가면서 나의 손, 몸 등 모든 것을 무섭게 뒤덮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고 응급차가 와서 병원에 실려갔다"

    결국 그녀는 1973년 일본으로 돌아와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갔고 현재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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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에 대하여
    호박은 애교가 있고
    굉장히 야성적이며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끝없이 사로잡는다.
    나, 호박 너무 좋아
    호박은 나에게는
    어린시절부터 마음의 고향으로서
    무한대의 정신성을 지니고
    세계 속 인류들의
    평화와 인간찬미에 기여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호박은 나에게는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호박은 말을 걸어준다.
    호박, 호박, 호박
    내 마음의 신성한 모습으로
    세계의 전 인류가 살고있는 생에
    대한 환희의 근원인 것이다.
    호박 때문에 나는 살아내는 것이다.

    일본으로 돌아온 쿠사마 야요이는 정신병원 인근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녀만의 소소한 작업을 펼치고 있다. 아흔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병 때문에 삶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다. 오히려 병이 그녀를 옥죄어 올수록 내면의 강렬한 의지로 맞서 싸웠다. 현대사회는 불안의 시대다. 누구나 그 속에서 정신적 방황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방황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음을 그녀를 통해서 볼 수 있다.

    고휘훈 기자 24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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