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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서향문제(書香門第)- 대대로 책 향기가 나는 집안

  • 기사입력 : 2016-01-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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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중기 하동군 옥종면 안계에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라는 학자가 살았다. 남명(南冥)의 학통을 이어 남명학파(南冥學派)를 주도했다.

    그 아우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과 함께 사림산 아래에 모한재(慕寒齋)를 짓고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며 지냈다. 낙와의 아들 설창 하철이 겸재의 학문을 이어 대대로 학문하는 집안이 되었다.

    근세에 와서 담헌(澹軒) 하우선(河禹善:1894-1975)이란 분이 있어 그 가학을 다시 꽃피웠다. 담헌은 자신의 학문도 대단했지만, 남명학을 중흥시킨 큰 공이 있다.

    남명선생의 신도비(神道碑) 문제로, 덕천서원에 출입하는 선비들 사이에 남인(南人)과 노론(老論)으로 갈등이 생겨 1926년께부터 남인 가문의 선비들은 덕천서원에 출입을 하지 않게 되었다. 덕천서원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안타깝게 생각한 남명 후손들이 담헌을 찾아와 덕천서원의 위상을 회복시키고 남명의 진면목을 다시 알려줄 것을 여러 차례 간청했다.

    그때까지 덕천서원에 출입하지 않던 담헌은 “선비들이 이런 식으로 당론에 구애되어 큰 인물을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을 깨닫고, 주변을 설득하여 같이 덕천서원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담헌은 먼저 강우지역(江右地域)의 유림들을 규합하기 위해 ‘덕천서원창수속계(德川書院創修續契)’를 결성해 5000여 명의 유림들을 결집시켰다. 이들의 성금을 접수해 강당과 사당만 있던 덕천서원의 동재(東齋: 동쪽 서재)를 지었다.

    ‘덕천사우연원록(德川師友淵源錄)’이라 하여, 남명의 선배, 친구, 제자, 사숙인(私淑人)들의 생애와 학문 등의 내용을 포괄한 책을 편집해 간행했다. ‘남명집(南冥集)’도 새로 인쇄하여 반포했다. 남명학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담헌의 집안에는 대대로 전해오는 1200여 책의 장서와 3000여 통의 서간이 소장돼 있다. 담헌의 손자 환재(渙齋) 하유집(河有楫) 옹이 이 문적(文籍)을 관리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다. 중간에 그 숙부 되는 분이 “여러 장 있는 서간은 나에게 몇 장 달라”는 말을 듣고서 조카이지만 숙부를 준엄하게 훈계한 이야기는 유림사회에서 유명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월 초 근 50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서 1200여 권을 조건 없이 경상대학교 문천각(文泉閣)에 기증했다. 서간 3000통은 책자로 만들기 위해서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가 있는데, 역시 경상대학교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금년 8월이면 경상대학교 고문헌도서관이 완공돼 기증받은 고서를 최신 설비를 갖춰 새롭게 진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때에 환재 옹의 고서 기증은 더욱 빛을 발한다.

    *書: 글 서·책 서. *香: 향기 향.

    *門: 문 문. *第: 차례 제·집 제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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