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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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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세 자루의 만년필- 성선경(시인)

  • 기사입력 : 2016-01-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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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내게 펜이란 것이 단순히 글을 쓰는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간혹 책을 낸 후배들에게 내가 쓰던 펜 한 자루를 선물로 주는 경우도 있었다. 펜 한 자루로 나는 우리가 함께 글을 쓰는 식구라는 동질감을 주고 싶었다.

    내후년이면 나도 등단 30년이 된다. 내 30년의 문단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만년필 세 자루가 있다. 맨 처음의 만년필은 내 막내 외삼촌께서 월남전에 참전하였다 돌아오며 사 오신 파카21 만년필이었다. 친조카가 여러 명이었지만 특별히 나에게 선물하신 것이다 지금은 촉이 다 닳아 쓰지 못하고 내 책상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다.

    두 번째 만년필은 내 애제자가 졸업 후 첫 봉급을 받고 기념으로 나에게 선물한 만년필이다. 아마 그때쯤 내 첫 시집이 나와 그 만년필로 서명을 하여 아이들에게 자랑하며 나눠 준 기억이 난다.

    세 번째 만년필은 내가 두 번째 산문집을 낸 출판 기념회 자리에서 선배 시인인 이월춘 형이 나에게 선물한 몽블랑 만년필이다. 형은 쓰시던 만년필을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 건넸다. 나는 그 마음이 전기처럼 찌르르 와 닿았다.

    나는 이 만년필로 몇 권의 책에 서명을 하였다. 서명이 된 내 책을 헌책방에서 만난 이후에는 나는 가급적이면 책에 서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고이 서명이 된 내 책을 헌책방에서 만나는 일은 그렇게 유쾌하지 못했다.

    세 자루의 만년필. 내 기억에 남는 세 자루의 만년필.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처럼 나는 세 자루의 만년필로 남은 사내쯤 되려나? 내 등단 30년 즈음 기억에 남는 세 자루의 만년필이다.

    지난해 나는 나의 연보 작업을 한 일이 있다. 처음 시작은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디로 등단해 지금까지 왔는지 한 서너 줄이면 될 것 같았던 연보 작업이 한 페이지를 넘겼다. 소소하게 기억해야 할 일들이 계속 생각이 나서이다. 짧은 연륜에 뭐 그렇게 기억해야 할 것이 많았던지?

    세상의 모든 일들은 기억에 의해 존재한다. 사랑도 역사도 다 기억에 의해 존재한다. 기억에서 사라지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께서도 내 기억 속에 있다. 내 기억 속에 있다는 것은 이분들이 지금도 존재하시는 것과 같다.

    어느 문학 강연 자리에서 한양대 유성호 교수님이 빈 커피 잔을 들어 보이며 질문을 했다. “이 커피 잔에는 커피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곧 이어 교수님은 “커피가 있다”는 말도 맞고 “없다”는 말도 맞다고 말씀하셨다. 다만 그 사이에 있는 차이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는 강연이었다. 그래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세 자루의 만년필. 언젠가는 다 닳아 못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내 기억 속에는 늘 세 자루의 만년필이 있을 것이다. 내 마음대로 글이 잘 풀리지 않아 힘이 들 때 나는 이 세 자루의 만년필을 생각할 것이다. 아마 이 세 자루의 만년필을 떠올리면 막막하던 원고도 저절로 채워지리라. 꼭 미리 준비한 원고처럼 술술 글이 풀리리라. 만년필 세 자루. 세 자루의 만년필.

    나는 세 자루의 만년필을 가졌다.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처럼 나는 세 자루의 만년필을 가졌다. 그래 나는 세 자루의 만년필로 남은 사내가 되어도 좋으리라. 기억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끝끝내 사랑하는 것이다. 다음, 그 다음에도 끝끝내 사랑하는 것이다. 끝끝내 존재하는 것이다.

    성선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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