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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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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의미를 부여하다- 김영미(수필가)

  • 기사입력 : 2016-02-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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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문학을 꿈꿔 왔던 이들의 등용문이기도 한 신춘문예 시상식에 참석했다. 당선자들은 어둠을 껴안고 깊은 숨을 몰아쉬었던 오랜 습작기를 떠올리거나, 문학에 대한 열망과 소신을 담담하게 말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들은 소중했던 인연과 끈을 지켜가겠노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기쁨을 전했다. 선배 문인의 격려 중에는 “문학으로 들어선 뜻있는 길에 절대로 걸음을 멈추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도 있었다. 당선자들은 어떤 의미로 영예로운 순간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을까.

    ‘붓 가는 대로’ 쓴다는 수필에 작가의 사상이나 철학을 유추할 의미 부여가 주어진다. 의미 부여(Sinngebung)란 심리학 혹은 인식작용의 본질적 계기로서 자극에 대한 반응 작용이다. 의미(Sinn)와 부여(Gegung)는 두 요소로 성립돼 ‘준다’와 ‘주어진다’라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농익은 사유로 전율을 일으키는 한 구절 시적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 절창인 한 문장이 삶을 담금질하거나 지탱할 때가 있다. 독자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는가 하면, 작가만의 개성인 미려한 문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무를 타던 원숭이가 연못에 비친 나뭇가지에까지 건너가려는 자아도취나 맹목적인 신봉은 위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의미를 부여함에도 서릿발 같은 자기의 원칙과 소신이 있어야 하겠다.

    글 한 편을 읽는 일보다 재미나고 다양한 일들이 참으로 많은 세상이다. 첨예한 눈빛과 발상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 독자들과 소통하며 교감을 나누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이 흐르듯 일필휘지(一筆揮之)로 풀어내 의미를 지향하며 작가는 마지막 정점을 찍어야 한다.

    살아갈수록 삶은 팍팍해진다. 정신은 혼탁해지고 마음은 물기 마른 나뭇잎처럼 서걱거린다. 여유를 느낄 수 없는 출근길에 붉은 신호등만 켜진다. 머피의 법칙처럼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고 꼬이는 일이 나에게만 주어진다고 투덜거린다. 써야 하는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넝쿨 같은 일상에 휘둘려 길을 잃을 때도 매순간 자신을 돌아보며 점검해야만 한다.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 닫힌 마음의 창을 열어 신선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삶을 윤택하게 하고 주춧돌이 되는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왜 쓰는가? 왜 사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 걷잡을 수 없는 생각들을 마름질하며 내일을 꿈꾸어본다.

    발걸음도 분분할 새해가 시작되었다. 아들이 짐을 꾸려 독립한 뒤, 청소를 하기 위해 굳게 닫혀 있던 다락방 문을 열었다. 그곳에 색이 바랜 사진첩과 구겨진 원고 뭉치들이 긴 겨울잠을 자고 있다. 다채롭고 창의적인 발상에 대해 의견을 나눴던 시간들이 간절한 얼굴로 묶여 있다. 그것은 내 안에 잠재한 의미 있던 그림이기도 하다. 새해 소망으로 그들에게 한 줌 햇볕을 쪼여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 첫울음을 울었을 때, 첫 걸음마를 떼었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으면 한다.

    문학이란, 거대하거나 아주 먼 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힘들 때 등을 토닥여 주는 사소함에서, 정을 나누는 이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무의미한 삶이란 없다. 새해에는 사고를 지닌 인간이 누리는 찬란한 의미부여(意味附與)를 창출해 보았으면 한다.

    김영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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