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목을 심은 지 삼 년 만에
높다란 가지 끝
딱 하나 열린 살구
사랑하므로 떠나보내고
기다리며 그리며 아껴보는
하나뿐인 딸아이 보듯
딱 한 개 높다랗게
익어가는 살구 알
아껴 아껴 훔쳐보는
오월 한나절
☞ 어떤 집이 있다. 사립문 대신 군불 불잉걸 가득 한 아궁이가 인사하는 집이 있다. 돌담 겨드랑이 장독대 곁에 감나무 비파나무 헌칠하게 서 있는 집이 있다. 밤마다 순도 높은 어둠이 마실 오는 집이 있다. 마실 온 어둠이 친정집에 온 것처럼 밤새도록 놀다가 가는 집이 있다. 별을 데리고, 달을 데리고, 바람을 데리고, 컹컹 개 짖는 소리를 데리고 온 어둠이 수정과도 한 사발 마시고, 깊은 가을처럼 숙성된 오미자술도 한 잔 마시고, 장작 난로 곁에서 뜨끈한 체온도 두어 사발 마시고, 놀다 가는 집이 있다. 팔순 넘은 라디오, 아직도 귀 밝고 목소리 낭랑한 집이 있다. 오래된 책들이 흙벽에 몸 기대고 음악을 듣는 집이 있다. 평상에 앉아 대보름달만 한 감자 먹고 대보름달만큼 배불러지는 집이 있다. 높다란 가지 끝 딱 하나 열린 살구처럼 아껴 아껴 훔쳐보고 싶은 집이다. 시인 부부가 사는 집이다. 어쩌면 시인 부부가 쓰는 ‘시’ 한 채다. 이중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