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30일 (토)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산청 동의보감촌 내 동의본가 김종권 한의사

잘나가던 서울 한의사, 氣찬 산골 한의사 되다

  • 기사입력 : 2016-02-11 22:00:00
  •   
  • 고교 시절부터 스님이 되려고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의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한의사가 된 후엔 서울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면서 전국 1위(한방분야)를 기록하는 등 잘나가다가 갑자기 한의원을 접는다. 이후 서울 남산골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진료를 하면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서울 생활을 홀연히 접고 첩첩산중으로 내려와 사는 이가 있다.

    산청군 동의보감촌 내 동의본가 한의원 김종권 (43) 원장의 이야기다. 김 원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이곳에서 한의사로 일하고 있다. 동의본가 한의원과 한옥스테이는 한의산업협동조합이 2013년부터 산청군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메인이미지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 내 동의본가 김종권 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할아버지 영향 받은 어린 시절= 어릴 때 부모님이 대구 시내에서 식당을 해 변두리에 사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이곳에서 할아버지께 한자는 물론이고 산과 들로 다니며 약초에 대해 자연스럽게 익혔다. 특히 할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무언가를 외우고 배탈이 나면 능숙하게 침으로 손발을 따줬다. 이런 할아버지가 멋있게 보였고 닮고 싶었다. 이후에도 동양의 수행을 동경하며 자랐고 학창시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종교에 관심을 가져 대학 진학 무렵에는 출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출가할 생각은 없었고 나중에 출가해서 불경을 보려면 한자를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의대 가서 한자를 많이 보면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출가하기 편할 것이고, 만약 한의사가 되더라도 적성에 맞는 데다 좋아하는 동양 문화를 실컷 공부할 수 있어 한의대 진학은 양수겸장(兩手兼將)이었죠.”



    ◆우여곡절 끝에 한의사 돼= 경희대 한의대 재학시절인 1996년 출가하기로 마음먹고 부모님께 얘기한다. 당시는 한의사-약사 간 한약 분쟁으로 전국 한의대생이 수업을 거부하던 때였다. 그러자 부모님은 그를 평소 알고 지내던 팔공산의 스님에게 데리고 가서 면담을 시켰다. 스님은 “출가를 하더라도 군대에 가야 하니 우선 군대에 가서 좀 더 생각을 해보라”고 권한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군입대를 한다.

    군생활을 반쯤 했을 때 고관절에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정밀 검사를 했고, 고관절 괴사라는 진단을 받고 의병 제대를 했다. “고관절이 아파 하루에도 몇 시간씩 하던 가부좌를 틀 수 없었고,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는 아예 출가 불가 사유 중 하나로 가부좌가 안 되는 경우라고 못을 박아놨더군요”. 그래서 출가는 포기하고 한의학에 집중한다.
    메인이미지


    ◆외국인환자 유치실적 한방분야 전국 1위= 2004년 서울 압구정에 피부 전문 한의원을 열어 유명 연예인도 많이 찾을 정도로 잘 되자 2009년에 명동으로 이전했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이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면 될 것 같아서다.

    이런 생각은 국내에선 한약재에 대한 불신감, 양한방 간의 싸움으로 인해 한의학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지만 외국의 경우는 동양의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고 통합의료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란 점에 착안했다.

    외국인 유치를 위해 일요일마다 인천공항 입국장에 가서 외국인 가이드를 대상으로 한의원 전단지를 직접 돌렸다. 이렇게 6개월 정도 직접 홍보를 하자 가이드들 사이에 소문이 나고 하나둘 외국인 손님을 데리고 한의원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는 일본인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환율이 당시만 해도 100엔에 1500원 정도여서 씀씀이도 괜찮았고 일본 사람들은 한의학의 효과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의사의 처방과 시키는 운동을 잘 따라 효과가 잘 나타난 것 같습니다.”

    약효의 소문이 일본까지 나면서 그의 한의원은 보건복지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2012년 외국인환자 유치 실적에서 서울대학교병원을 누르고 종합 5위를 차지했다. 당시 외국인환자 유치 실적은 3000명 정도로 하루 9명 정도의 외국인이 매일 한의원에 진료를 보러 온 셈이다.

    그러다가 한의원을 대대적으로 확장 이전했는데 엔화 급락과 한일관계 냉각, 북한 핵문제 등으로 일본 환자들이 반토막나고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다. 여기에다 부친이 2014년 초 폐암 확진 후 열흘 만에 돌아가시자 심신이 지쳐 한의원을 정리한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새 길 찾아= 그해 3월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전통 한의원을 재현해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진료를 보는 행사에 1년간 참가한다. 외국인과 차 마시고 치료를 해주면서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전국의 명소에 한의사를 배치해서 외국인들 진료를 하면 한의의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외국인들에게는 아픈 곳 치료해줘서 좋고 한국의 한의학과 문화를 알릴 수 있죠. 또 지역특산물을 개인 체질에 맞춰 소개해주면 수익도 올릴 수 있고요. 건선·아토피·암 같은 난치병은 단기간에 치료할 수 없으니 전문 치료 병원을 소개해주는 센터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한방 의료관광의 한계점도 갖고 있었다. 상담과 침 치료 등을 통해 한방 치료에 호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는 사람들이 한약을 구입하고 싶다고 해도 판매는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다. 이런 가능성과 제약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곳을 고민하다가 찾은 곳이 현재 근무하는 동의본가 한의원이다.

    메인이미지
    김종권 원장이 환자를 진맥하고 있다.


    ◆산청 동의본가에서 삶= 지난해 8월 산청 동의본가를 방문해 한눈에 반해 10월부터 내려와 진료를 하고 있다. 20여 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한 것이다. “제가 처음 여기 내려왔을 때 주변 지인들께 드린 말씀이 출가한 것 같아서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현재 이곳은 한의원이 생긴 줄 모르는 산청 주민들보다 주말에 진주·거제·통영·부산 등지에서 많이 찾는다. 입소문을 타고 가족 친지들이 함께 오는데 광주-대구 고속도로가 확장 개통되면서 대구와 광주에서도 많이 오고 있다.

    “중국·일본·태국인들이 단체로 산청에 의료관광을 올 경우에 대비해 프로그램도 갖췄습니다. 40명이 몰려도 기본 진료 이외에 한방 스파, 왕뜸 체험, 십전대보탕 약첩싸기, 한방 비누 만들기, 공진단 만들기 등의 코스가 진행되도록 준비돼 있습니다.”

    하루 일과는 일어나 출근해서 진료를 하고 마치면 책을 보거나 참선을 하기도 하고 중국어·일본어를 공부하기도 하면서 보낸다.

    “도시 생활을 열심히 하시다가 몸과 마음이 힘들어 산청에 충전하러 오시는 분들께 산청의 좋은 약과 기운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밝히는 앞으로의 소박한 계획이다.

    이명용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명용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