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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기자] 다시쓰는 7번 국도- 프롤로그

  • 기사입력 : 2016-02-16 13: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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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부 김언진(1989년생), 문화부 이슬기(1988년생), 방송인터넷부 김유경(1985년생).

    미혼의 여기자 셋은 1박 2일의 일정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설날에.

    왜 우리는 여행을 떠나야만 했을까. 그것도 하필이면 설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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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셀카봉은 부러졌다. 그러나 여전히 즐거운 세명. 왼쪽부터 이슬기, 김언진, 김유경 꽃기자.


    ▲속리산 로얄호텔 219호의 '단풍결의'
     
    명쾌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빨갛게 단풍이 물들 무렵이었다. 지난해 10월 3일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주관하는 속리산 등반대회가 있었다.


    창원에서 출발해 속리산까지 혼자 가려면 지루하니 우리는 함께 가기로 했다. 집합 장소에 도착해 우리는 도착한 순서대로 나열돼 있는 참가자 명단에 93번부터 95번까지 차례로 이름을 등록했다. 그리고 같은 번호가 적혀있는 경품 행운권을 받아챙긴 뒤 배정받은 숙소에 짐을 풀었다. 간단히 밥을 먹고 산행을 했다. 산행 도중에 긴 생머리가 매력적인 남자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쉼터에서 동동주와 파전을 먹고 마셨다. 너무 오랜만에 몸을 많이 썼던 탓인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우리는 드러누워 뻗었다. 함께 산행을 했던 후배 기자가 곧 경품 추첨을 시작하니 빨리 내려오라고 재촉했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내려가는 대신 우리는 후배에게 행운권을 전해주며 혹시 당첨되면 받아오라 부탁하는 쪽을 택했다.

    흥분한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쩌렁쩌렁 고함을 치는 소리와 당첨된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번갈아 들리며 경품 추첨은 더욱 열기를 더해갔다. 하지만 뜨끈한 온돌에 온 몸을 맡긴 우리는 바깥 세계의 난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점차 움직임이 둔해지며 의식은 희미해져갔다.

    그런데 사회자의 마이크를 통해 '95번!'이라는 소리가 창문을 두드리자 우리는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대회로 치면 대상 격인 가장 고가의 경품! '제주도 호텔 숙박권'이 당첨됐다. (이 자리를 빌려 행운권과 경품을 대신 받아준 후배 도영진 기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당첨되고 보니 우리는 서로 번호를 나눠 갖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곧 '이 상품들의 소유권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난제에 부딪혔다.

    하지만 솔로몬의 뺨을 여러대 후려치고도 남을 명판결이 나왔다.

    '우리끼리 같이 여행가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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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사랑은 어디쯤,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운명을 짊어진 여자들
     
    하지만 계절이 바뀌도록 약속의 실천은 번번히 실패했다. 하루하루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일에 파묻혀 있어 이 굴레를 벗어날 엄두가 나질 않았기 때문.

    그러다 내가 '이번 설 연휴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어떻느냐'는 제안을 조심스레 했고 선배들은 물개박수로 동의했다.

    우리 셋은 공통점이 많다. 평균 신장이 150㎝대의 작은 키를 갖고 있지만, 어디서 주눅 든 적은 별로 없다. '성격이 까칠하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다들 한 성질머리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집을 못 갈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새벽같이 일어나 일선 경찰서 형사계와 교통조사계를 돌며 형사들과 조사관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그 시절. 사스마와리를 함께 돌았던 아름다운 추억도 공유하고 있다.(방금 감은 축축한 머리칼에,노 메이크업으로 노트북을 들고 경찰서 복도를 뛰던 우리의 모습은 잊어달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한 집안의 개혼(開婚)의 운명을 지닌 '맏이'라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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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하는 회사원(경향미디어. 2016) 도서 중 일부>


    아직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저거 저래서 시집은 가겠나'라는 가족들과 친지들의 걱정과 염려를 온 몸으로 감내해야하는 슬픈 운명에 처한 사람들이다.

    특히 명절은 고통이 배가 되는 썩 반갑지 않은 날이다. 가족이 다 같이 모여 함께 정을 나눠야만 하는 명절에 우리가 아직 가족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놓고 친지들에게 기꺼이 '조리돌림'을 당해야 한다. '시집은 언제갈래', '더 늙으면 어느 남자가 데리고 가겠냐', '돈을 얼마나 모아뒀니' 등 마치 취조를 당하는 듯한 무례한(!) 질문들이 '배려와 사랑'이라는 허울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비수처럼 박힌다.

    솔직히 '때되면 가겠죠. 요즘 세상에 벌어 먹고 살만하면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죠.', '지금보다 더 못났을 때도 이쁘다고 쫓아다니는 남자들 많았는데요', '그러는 삼촌은 노후 준비는 제대로 하고 계신가요?'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만약 실제 입 밖으로 꺼낸다면 다시 '가족'의 이름으로 철저히 응징당하고 말 것이다.

    나의 주체적인 삶을 부정당하는 애정어린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명절을 거부하기로 했다. 가족의 정(情)도 모르는 '이기적인 것'으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왜 우리가 이기적으로 변했는지부터 곰곰히 생각해보길 바란다. 한 개인의 삶을 몇 개의 단어와 문장으로 옳거나 그른 것으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

    나는 가족들을 좋아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고, 어릴 적 서로의 흑역사를 폭로하며 깔깔대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나 자신'이 제일 좋다. 명절이 더 이상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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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경·이슬기 기자가 피난을 가기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박 2일 여행에 1년치 짐을 싸왔다.

    ▲무계획도 계획이다
     
    우리는 경품으로 받은 호텔 숙박권을 쓰기 위해 제주도 여행을 계획한 것이지만, '설 연휴'에 간다는 생각은 잠시 잊었다.
    명절을 맞아 제주도가 고향인 귀성객들과 연휴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은 이미 재빠르게 항공권을 선점한 탓에 우리가 탈 수 있는 좌석은 애저녁에 동이 났다.

    그것도 모르고 여행갈 생각에 그저 신이 나 들떠있던 몇 주를 생각하니 좌절감이 눈덩이처럼 더 커지는 듯 했다.
    당당하게 집에도 '명절 거부 선언'까지 했는데 여행이 파투나 버리면 무슨 그런 우세스러운 일인가 싶었다.

    우연히 퇴근 시간이 겹쳐 회사 주차장에서 마주친 우리 셋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국내 여행이라도 하자'는 제안에 다시 한 번 물개박수를 쳤다.
    그리고 정했다. 설 연휴 당일에 기차역에서 만나 차표가 있는 것 아무거나 타고 어디든 가고, 정 없으면 다시 돌아오기로.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떠나자고 말이다.

    여행하기로 한 날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우리는 정말로 아무것도 정한 것이 없었다.

    그러다 나는 출입처 홍보실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우리의 계획을 말했고, 모 실장님은 '그러지말고 차도 있는데 7번국도 따라서 가보는 것도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이 말을 선배들에게 전했고, 우리의 여행은 '7번 국도 여행'으로 바뀌었다.(이 자리를 빌려 탁월한 제안을 해주신 경남대학교 이성일 홍보실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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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인 지난 8일 오전 도로는 귀경차량과 성묘객들이 몰려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하지만 놀러가는 이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철의 대게살처럼 속이 꽉 찬 여행
     
    설 당일인 8일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각 유경 선배 집 앞에서 만났다. 이동수단은 연비가 좋은 내 차가 낙점됐다. 1박 2일의 일정이었지만 다들 짐은 무슨 당장 내일 전쟁이 나도 한 두 어달은 살 수 있을 정도로 세간살이를 다 싸들고 나온 것처럼 갖고 왔다.

    코스는 경주 시내를 가로질러 7번 국도를 타고 강릉까지 가기로 했다. 가다가 날씨가 좋지 않거나 힘들면 언제든 중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2시 30분쯤 경주 보문호수에 도착했다. 호수를 한 바퀴 걷고 근처에 자리를 깔고 앉아 주전부리를 먹을 계획이었지만 바람이 불어서 그냥 다시 출발했다. 한 시간여를 더 달려 포항 화진해수욕장에서 잠깐 멈춰섰다. 바다를 보며 차 안에서 수육이며, 각종 전과 튀김 등 명절 음식을 꺼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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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마음으로 한참을 달려 경주 보문호수에 도착했다. 가볍게 한 바퀴 산책을 하려 했지만 너무 추워서 사진만 찍고 바로 다시 차에 탔다.

    비좁은 차안에서 음식을 펼쳐놓을 자리가 부족해 한 음식을 먹고 치우고 다른 음식을 꺼내어 먹는 본의 아니게 코스요리를 먹는 기분이었다. 화진휴게소 한 쪽 노점상(이름은 '패션하우스')에서 유경 선배가 슬기 선배와 내게 기능성 내복을 한 벌씩 사줬다. 겉에는 '입기만 해도 S라인이 가꿔진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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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고파 뭘 좀 먹으러 들린 화진휴게소에서 우리는 밥을 먹고 기능성 내복을 충동구매했다. 잠깐 쉬었다 가려고 했는데, 수다를 떨다보니 해가 다 졌다.

    일몰을 지켜본 뒤에야 다시 출발했다. 겨울이라 해가 금세 기울었다. 7번 국도를 따라 보이는 경치가 좋다고 했지만 이미 해가 진 후라 보이지도 않았다. 도로 변에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모텔은 참 많았다. 한참을 달려 강원도로 진입했다. 도로 옆으로 눈이 쌓여있는 걸 보니 실감이 났다. 남쪽에서는 눈을 많이 못보니 잔뜩 흥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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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청학사에서 우리가 묵었던 방. 장작으로 불을 뗀 방바닥은 자글자글 끓었고, 우리는 몸 방향을 이리 틀고 저리 틀어 골고루 익혔다.

    겨우겨우 달려 목적지인 강릉의 한 사찰인 청학사에 도착했다. 여기서 묵기로 했다. 이 곳은 유경 선배의 친지가 주지스님으로 계신 곳이다. 밤 9시가 넘어서 도착을 했지만 스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스노우 체인도 없이 어떻게 여기까지 무사히 왔냐고 하셨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다. 스님께서 손수 밥상을 차려주셨고, 우리는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절에서 키우는 개 복실이는 덩치에 맞지 않게 여자를 보면 슬슬 눈치를 보며 피했다.

    스님이 내려주신 차를 마시고 귀한 술도 한 잔씩 마셨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몸을, 장작으로 불을 뗀 절절 끓는 방에 뉘였다. 바람에 짤랑거리는 풍경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을 청했다.(이 모든 것을 자비로 베풀어주신 법타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무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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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바닷바람은 맹렬했고, 미녀 기자 3명을 순식간에 못난이로 만들었다.

    코까지 골아가며 자고 일어나 절에서 차려준 떡국을 한 그릇씩 허겁지겁 먹고, 스님이 추천해준 코스를 따라 강릉시내 여행을 했다. 커피의 성지라 불리는 테라로사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송정 해변에 가서 칼바람을 맞은 뒤 경포대에 올라 경포호 구경을 했다. 다시 내려와 선교장을 들러 고즈넉한 고택을 둘러보다 햇볕이 잘 드는 어느 마루에 한참을 앉아 있다 출출한 배를 이끌고 인근 식당에 가서 메밀칼국수와 비빔막국수, 감자전과 감자만두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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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사실 이렇게 예쁜 사람들이다. 윗 사진은 순전히 바람 때문이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두울 때 보지 못했던 7번 국도를 따라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했다. 그러다 유경 선배가 '이쯤 어디에 바다가 보이는 휴게소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고, 500m 앞에 거짓말처럼 망양휴게소가 있었다. 휴게소에 들러 바다를 구경하고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다시 부지런히 달렸고 저녁 7시 반쯤 출출해진 우리는 길을 틀어 영덕 강구항에서 대게를 먹었다. 게딱지에 밥까지 비벼먹고 나서 배를 두드리며 만족한 우리는 밤 11시가 돼 각자의 집에 도착했고 실신한듯 곯아 떨어졌다. 김언진 기자 hope@knnews.co.kr
      
    *다음 회부터는 멈춰 선 장소마다 세 기자 각자의 시선이 담긴 세 편의 같고도 다른 여행기가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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