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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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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문태준

  • 기사입력 : 2016-02-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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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매가 하얀 초승달을 닮았던 사람

    내 광대뼈가 불거져 볼 수 없네

    이지러지는 우물 속의 사람

    불에 구운 돌처럼

    보기만 해도 홧홧해지던 사람

    그러나, 내 마음이 수초밭에

    방개처럼 갇혀 이를 수 없네

    마늘종처럼 깡마른 내 가슴에

    까만 제비의 노랫소리만 왕진 올 뿐

    뒤란으로 돌아앉은 장독대처럼

    내 사랑 쓸쓸한 빈 독에서 우네

    ☞ 꽃 피는 시절엔 떡잎의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고 열매 맺는 시절엔 꽃의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괴테의 말은 너무 고전주의적이다. 후광을 목도리 두른 인격이나 삶의 열매를 이미 거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인격의 영역에서든 삶의 영역에서든 애당초 열매라는 것이 없는 평범한 삶은 이미 도달한 열매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고전주의보다 격렬한 개화(開花)의 시기에 눈길을 두는 낭만주의에 더 끌린다.

    범부의 생에 있어 눈먼 개화의 시기 이후 마음은 늘 내리막길이다. 수초밭에 갇힌 방개처럼 생활의 늪에 갇히게 되고, 가슴은 마늘종처럼 깡말라 버리고, 세월의 신산에 광대뼈 불거진다. 하여, 중년의 어느 날 뒤란의 빈 독처럼 쓸쓸할 때 돌아볼 수밖에! 눈먼 첫사랑의 시절, 그 어지럽고 아름다운 개화의 시절을! 이중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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